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리 Jan 02. 2023

#7. 겸손을 배운다.

친한 선배로 부터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것은 '겸손'을 배우는 일이지."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혼도 하기 전에 들었던 이 문구는 뭐랄까..

글자로는 알겠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랄까^^


세상을 살며 내가 체감해 본 '겸손'의 태도란,, 내가 잘난사란임을 애써 먼저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는 정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감정의 단어들 중에는 아직 내가 세상을 살며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많다.


가슴이 저릿하도록 아프다.

먹먹하다.

벅차오른다.

사랑한다.


위 감정들을 글자로 적어내려갈 순 있지만, 느껴보지 않고서야 정확한 그 느낌을 알기란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보고 나서야 아 이게 가슴이 저릿하도록 아프다는 거구나. 하고

비로소 알게 되 것처럼.

자식을 통해 느끼는 겸손이란 태도나에게 그러했다



생후 119일을 맞은 초록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딱히 아픈 곳도 없어보이고, 조금 찡찡대는 것 뿐인데 38.3도..

만나지 4개월도 채 안된 아기가 열이나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

아기를 안고 병원을 뛰어가며 아 이게 그 겸손이구나..하고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어졌다.

"그저 건강하게 아무탈없게 별 것 아니게 해주세요."

"제발 제가 대신 아플 수 있게 해주세요."

타인의 행복과 건강을 내자신보다 앞세우게 된다는 것.

건강하게 자라준다는 것이 세상 모든 신들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내가 이토록 겸손해질수 있도록 초록이를 우리곁에 주셨나 싶었다.


생후 119일에 초록이는 (이제와서 별것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요로감염으로) 처음 입원을 했고,

통통한 아기 팔에 주삿바늘을 찾는 내내 아기도 울고 나도 울고 남편도 울었다.


별것 아니라고들 하는 흔한 질병 앞에서

종교도 가져보지 않은 나는 모든 신을 붙들고 기도했고,

초록이가 우리 곁에서 그저 건강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간절함이었다.


34년을 는 동안 느껴보지 못한 마음을

고작 4개월을 함께한 아기를 통해 배다.


초록이는 앞으로 우리를 얼마나 성장시킬까..

비로소 어른이라는 이름에 아주 조금 가까워지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6. 우리의 아기를 만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