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퉁퉁증 May 03. 2022

7년 만에 연락한 선배의 황당한 꿈 이야기

꿈에서도 혼날 줄이야!

"니가 꿈에 나와서 혼나는 거야"




대학 시절 학과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사범대였던 터라 이상한 똥 군기를 잡는 문화가 있었는데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작해야 서너 살 더 먹은 것뿐인데 툭하면 모아놓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게 우스웠다. 술도 좋아하지 않아 뒤풀이에 가는 것도 고역 이어 웬만한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는 나를 두고 동기들은 자유인이라 불렀다. 그런 자유인이었지만 따로 만나서 밥도 먹고 연락도 하고 지내는 선후배들도 몇몇은 있었다.


M선배는 나보다 3학번 높은 남자 선배였고 사는 지역이 같았다. 많은 교류는 없었지만 같은 학년 수업을 들은 적도 몇 번 있었고 같은 지역에 사는 과 후배들을 모아 몇 번인가 만나기도 했었다. 학교를 다니다 비슷한 시기에 각자 일본으로 떠났는데, 선배는 교환학생으로 아키타현으로 가게 되었고 나는 도청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 옆동네인 가나가와현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선배는 그곳에서 인연이 되어 일본인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선배와는 같은 시기에 졸업을 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졸업식 때 선배가 사진을 찍어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선배는 여자 친구와 함께 다시 아키타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결혼을 했다. 일본에서 살고 싶어 했던 선배였기에 대단한 인연이라 생각했다.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어 했던 나 또한 졸업을 하고 다시 일본에 가게 되었었다.


일본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아키타의 다자와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의 귀국이 정해졌다. 일본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다시 한국에 돌아가기로 했고 그전에 일본을 둘러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라면 굳이 가지 않을 곳들을 가보려고 생각하다 선배 생각이 났다. 야간 버스를 타고 아키타에 도착해서 선배 부부를 만났던 것이 벌써 몇 년이나 흘렀다. 나는 귀국해서 다시 취업을 했고 일에 치여 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연락은 따로 하지 않았다. 미주알고주알 연락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용건도 없는데 연락할 일도 없었다. 그러던 작년 어느 날 라인으로 메시지가 왔다.


"아직 이 번호 사용하니?"


선배였다. 일본은 라인이 국민 메신저이고 한국에서는 안 쓰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다. 그 사이 선배는 아이 아빠가 되어 있었고 개업한 한국어 교실은 잘 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부인이 된 여자 친구도 잘 지낸다고. 안부를 먼저 물어준 선배가 너무 고마웠는데 그다음 말에서 웃음이 터졌다.


"내가 꿈을 꿨는데 네가 나왔어. 어떤 사람이 너를 막 혼내길래 내가 나서서 얘는 이럴 애 아니라고 따졌어."


웃기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그 당시 나는 회사에서 이리 터지고 저리 터져서 너덜너덜해져 있던 상태였다. 마치 오랜 인연이 회사에서 얻어터지고 있는 나의 방패막이 되어준 것 같았다. 그즈음 내가 담당한 브랜드에서 역대급으로 투자를 많이 한 프로젝트(?)를 준비중었다. BM 이래 봐야 나 포함 두 명이라 준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거기다 기존 업무를 병행해야 했기에 야근에 주말출근에 휴일 출근에 나는 종잇장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위에서는 계속된 지적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것은 무리한 요구였고 내가 혼날 일이 절대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선배의 연락이 너무 반가웠다. 그 멀리서 어떻게 그런 기운이 닿았던 걸까. 우연이라기엔 말도 안 되는 꿈이지만 이렇게 인스타그램의 팔로우가 또 하나 늘었다. 선배는 아키타에서 취미로 사진을 찍으며 드론을 날리며 행복해 보이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이전 01화 이거 완전 친일파 구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