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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퉁퉁증 Jul 09. 2022

동유럽을 여행하다 일본의 아날로그가 떠올랐다

어쨌거나 2년 반만의 여행은 즐거웠다.

"그냥 비밀번호로 해놓지 왜 열쇠로 해놓은 거야!"




코로나 확산 직전인 2020년 1월 설 연휴, 엄마와 일본 여행을 떠났었다. 정확히는 여행이라기보다 내가 살던 동네 마실? 정도. 그때 다니던 회사는 연차라도 한번 쓰려고 하면 노골적으로, 아주 대놓고 싫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 연휴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덕분에 코로나 확산 전 막차를 타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 브랜드 BM으로 일하고 있어 긴자의 백화점에 들러 일부러! 담당 브랜드의 매장을 확인하는 대단한 노예근성을 발휘한다. 나란 노예, 성실한 노예.


긴자 카페에 앉아서 읽은 기사

밥도 먹고 가보고 싶었던 긴자 식스에도 갔다가 잠깐 쉬러 카페에 들어갔다. 바깥 구경을 하다가 인터넷을 보니 마침 '긴자 거리서 들려오는 한국어..’라는 기사를 보고 보이콧 이슈가 사그라드는 것인가도 생각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전 세계에 역병이 돌았다. 나는 그 와중에도 재택근무 한 번 없이 상노예 생활을 하다 나가떨어져 어른의 방학에 돌입했다. 동유럽 여행을 추진한 것은 귀국 후 격리가 없어졌고 신속항원 결과도 받아주는 데다가 큰 수술을 받았던 엄마가 건강을 많이 회복한 점. 무엇보다 나의 방학이 점점 끝나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년 반 만에 해외여행. 짐을 싸 보자!


여행지는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로 정하고 각 4박, 3박, 3박으로 총 10박 12일의 일정이었다. 장기여행용 가방은 바로 무인양품의 빨간색 캐리어. 문제는 바로 캐리어의 잠금장치가 열쇠라는 것이다.


출처 무인양품 홈페이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 잠금장치의 열쇠가 문제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캐리어 안에 열쇠를 넣어두고 잊어버린다. 짐을 싸고 가방을 닫을 때마다 여행지에 도착했는데 열쇠를 잃어버려 가방을 다신 열지 못할까 봐 두렵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가방을 부숴야 하나? 부서지긴 하는 걸까? 아니면 지퍼 부분을 찢어야 하나? 하여튼 그런 불상사가 두려워 비교적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일본에 갈 때는 열쇠를 채우지 않기도 한다.


부다페스트의 아름답던 야경

이번 여행에서 캐리어 열쇠 담당은 엄마였는데 비밀번호가 아닌 것을 굉장히 불편해했다. 더군다나 세 나라를 기차로 이동해 캐리어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야 했으니 더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그냥 비밀번호로 하면 좋을 것을 불편하게 왜 열쇠냔 말이다. 이것은 2년 반전의 일본 여행기도 아닌, 역병의 시대에 떠난 동유럽 여행기도 아닌, 일본의 아날로그 라이프스타일 이야기다.


일본의 집들은 아직도 대부분이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열쇠고리 파는 곳과 열쇠집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니 세상에 무슨 열쇠고리를 달고 열쇠를 들고 다닌단 말인가? 우리가 들고 다니는 열쇠라고 해봐야 거의 자동차 키밖에는 없을 것이다. 나도 일본에 살 때는 집 열쇠를 들고 다녔는데 내 주위의 일본 사람들에게 열쇠 들고 다니기가 너무 불편하다고 말하면, 비밀번호로 해놓는 것보다 열쇠가 더 안전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비밀번호는 들키면 바로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지 않냐면서. 아마 무인양품의 캐리어도 이런 일본인들의 발상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 하는 나의 추측.


일본은 아직도 집에 전화기 일체형 팩스를 둔다. 사용빈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류를 보내거나 받을 때도 사용하고, 팩스로 주문서를 받기도 한다. 업무를 할 때도 이메일로 보내면 될 것을 팩스로 보내달라고 하는 곳들도 많았다.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연하장을 보내는 문화는 여전하다. 연하장 전용 프린터가 따로 있을 정도인데,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레이아웃에 맞춰 가족사진을 넣는 등 커스터마이징 해서 전용 프린터로 프린트를 한다. 12월 28일쯤 우체국에 보내면 1월 1일 아침, 각 집의 우편함에 연하장이 꽂히게 된다. 심지어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몇 해간은 한국에까지도 보내주었다.


출처 www.dreamstime.com

여전히 지역 소식지를 많이 본다. 타운 워크, HOT PEPPER 등의 무가지가 있는데 이걸 보고 정보를 얻는다. 우리로 말하면 번영로 같은 무가지로, 보는 사람이 많은 만큼 퀄리티가 높고 지면 영업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로 말하면 홈쇼핑 잡지인 통신판매 잡지도 신청하면 집으로 보내준다. 품번이 있어 그걸 보고 주문하는 시스템으로, 내가 꼬맹이때나 봤던 기억이 있는데 여전히 일본은 이 무가지를 본다.


아직도 현금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가게에서 카드를 받아도 현금을 쓰는 사람이 많고 체크카드(데빗카드)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보니 모두들 현금을 여유 있게 챙겨 다닌다. 그래도 요새 애플 페이와 Paypay(소프트뱅크와 야후 재팬의 합자회사에서 만든 QR코드 결제 서비스)가 정착했다는 것, 아이폰 유저로써 그 점은 매우 부럽다. 온라인에서 결제할 때 '편의점 결제'와 '만나서 현금 결제'가 있는 것이 독특하다. 편의점 결제는 편의점 안에 있는 기계에 주문번호를 누르고 결제 용지를 받아서 점원에게 현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만나서 현금 결제는 택배 기사님께 직접 현금을 내고 물건을 받는 형식인데 수수료가 붙기도 한다. 두 방법 모두 불편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만나서 현금 결제하는 방법밖에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아날로그 일본. 디폴트 값이 그것인 양 이전부터 써왔던 것들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반면 너무 빠르게 변하는 우리나라.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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