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의 나의 몫
몇 해 전 서울, 일리네어의 공연을 보러 도쿄에서 일본인 S언니가 날아왔다. 공연이 끝나고 마침 한국에 여행 온 S언니의 일본인 지인 T상과 T상의 지인 한국인 N씨가 합류해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국인 2명, 일본인 2명이 한국어와 일본어, 짧은 영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었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 일이 벌어졌다.
나는 한참을 얘기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있던 남자 2명이 우리를 힐끔거린 모양이다. 갑자기 한국인 N씨가 화난 목소리로 "왜 자꾸 쳐다보세요!"라고 했고 그제야 나는 무슨 일인지 알게 되었다. 반쯤 취한 건너편 남자들이 낄낄거리며 "아 아니에요~" 하고 대답했다. 식당에는 우리를 포함해 2~3 테이블 밖에는 없었기에 식당이 조용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저쪽 테이블에서 우리를 자꾸 힐끔거린다고 했다. 우리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한국인 N씨의 기분 탓이 아닐까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다시 한번 한국인 N씨가 "자꾸 쳐다보지 마시라구요!!" 하는 순간,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더군다나 한국에 여행 온 일본인들과 같이 있는데 귀찮은 소동이라도 휘말리지 않길 바랐다. 그러자 건너편 테이블에서 남자 한 명이 벌게진 얼굴로 조롱하듯이 더듬대는 일본어로 말을 꺼냈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겨드랑이에서 땀이 났다. 현실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게졌고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그 짧은 순간에 싸움으로 번지면 경찰이라도 불러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취기였는지, 아니면 자신이 일본어 한다는 걸 옆사람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을 씨게 넘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S언니도 그만해달라고 말했고 화가 잔뜩 난 나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오히려 웃으면서 내가 이렇게 화내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더 화났던 것은 그 사람들은 담배 피우러 나간다는 구실로 우리 테이블 옆을 몇 번인가 지나가며 어쭙잖은 일본어와 꼬부라진 한국말로 말을 걸어댄 것이었다. 비아냥대는 태도로 우리의 즐거운 시간을 망쳐버렸다. 그 자리는 어딘가 개운치 않게 마무리가 되었고 이따금 기억 속에서 떠오른다.
S언니는 한국 힙합을 정말 사랑한다. 한국 힙합에 빠져 일과 별개로 한국 힙합 가수의 공연을 주최하게 된 것을 계기로,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음악 쪽 일을 시작했을 정도다. 한국 음악과 관련된 웹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고 한국 힙합에 대한 책도 발매했다. 관련 일을 하게 되자 메일로 우익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협박성 메일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메일 같은 것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했지만 면전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여행 오는 일반적인 일본인이라면 대다수가 한국에 관심이 많고 호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처음 보는 타인이, 그것도 개인대 개인으로 역사나 정치 이야기를 꺼내며 비꼬는 게 상식적인가. 항의할만한 곳에서, 항의할만한 대상에게 사실을 알리고 주장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식당에서 저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낯선 곳에서 폭력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아마 다시는 일본에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우리의 역사에서 태어난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믿으며, 그날은 그냥 희박한 확률에 운 나쁘게 걸린 셈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