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할머니 학생의 질문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운이 좋게' 도청에서 선발하는 해외 연수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대학을 휴학하고 일본으로 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한국어 교실을 준비하던 예비 사장님이었던 S언니를 '운이 좋게' 일본어 학교에서 알게 되었다. 대학 전공이 일본어 교육이었기 때문에 캐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운이 좋게' 캐셔보다는 몸이 편한 S언니의 한국어 교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했을 때 다시 S언니에게 연락이 와서 다시 한국어 교실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반나절을 고민하고 일본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다시 가게 된 일본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쳤다. 좋은 기회를 잡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휴학하고 경험했던 일본의 동네가 너무 사랑스러웠기에 졸업을 하게 되면 막연히 일본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지에 가지 않는 이상 해외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였고 특히 문송한 문과생이 비자까지 발급해 줄 회사를 찾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흔쾌히 제안을 해주었고 교육학을 전공했기에 취업 비자 발급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어 교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한국에 호의적이고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큰 메리트가 있는 직업이었다. 내가 일했던 한국어 교실은 한국의 흔한 외국어 학원과는 다르게 1:1 혹은 1:2 형태의 소규모 레슨으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의 나이도 다양했고 배우는 목적도 다양했다. 그중에 O 학생은 매주 수요일 2시 30분에 고정으로 오는 70대 할머니 학생이었는데, 작은 체구에 걷는 것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백팩을 메고 다니는 분이었다. 일본 지상파에서 방송되었던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를 보고 장근석, 일명 근짱을 좋아하게 되며 인생이 즐거워지셨다고 한다. 장근석을 계기로 한국 드라마에 입문해 70대에 한국어 공부까지 시작하신 한류 할머니 되시겠다.
한글을 모르는 채로 교실에 오셨고 성실하게 글자부터 외우셨다. 매일 바른 글씨로 일기를 쓰셨고 매일 한국 드라마를 보셨다. 한 단원이 끝나고 보는 단원 테스트도 열심히 공부해 오셨다. 젊은 학생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셨는데 그 태도가 가르치는 사람이자 한국인으로서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수업 시간.
“선생님 집도 밖에서 세수를 하나요?”
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네? 하고 무슨 말인지 생각하다 그 의미를 알아채고 빵 터졌다.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O 학생은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간접 체험 중이신데 일일 드라마 단골 등장 주택인 ㄷ자 형태의 마당에서 배우들이 세수하는 걸 말씀하신 거다. 마당에 벤치프레스도 한 개쯤 있다면 금상첨화! 다소 귀여운 질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진짜 한국에서는 밥 먹을 때 생선을 발라서 올려줘요?”
이것도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 이건 우리 엄마도 나에게 많이 해주기 때문에 애정을 담아서 반찬을 올려주는 거라고 답하니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다. 의외로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셨는데 그 이유를 묻자,
“여자들이 소리치고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게 너무 속이 시원해요”
O 학생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자기 연민과 허약한 체질의 자신에 대한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어하셨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일에 매진하며 가정을 소홀히 했던 남편에 대한 응어리와 끈끈하지 않은 딸들에 대한 서운함이 마음 깊이 자리한 분이었다. 그렇기에 감정을 터트리는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셨던 것이다.
웃기면서도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했기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가끔 얼토당토않은 막장 드라마를 볼 때 O 학생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