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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퉁퉁증 Jan 11. 2022

일본 장례식에 울려 퍼진 여보세요

인생 처음으로 고인과 인사하게 되었던 그날

"한국사람이라고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일본에 살면서 참 경험하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관혼상제였다.


. 일본의 성인식은 1월 둘째 주 월요일로 만 20살이 되는 일본의 모든 젊은이들이 해당한다. 이때 미리 구청에서 젊은이들에게 엽서를 보내 성인식 장소를 고지하고 성인이 됨을 축하해준다. 어학연수 시절 룸메이트 동생이 마침 만 20살이었기에 외국인임에도 성인식 안내장을 받았고 만 21살인 나는 받을 수가 없어 괜히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 일본의 결혼식은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해 식사와 답례품을 준비하기 때문에 초대를 받았는데 참석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 식사와 답례품이 꽤 값이 나가기도 하며 축의금도 많이 하고 차림새에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초대를 받으면 어느 정도 경제적인 각오를 해야 한다. 주변에 물어보니 축의금은 평균적으로 3만 엔(약 30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나도 지인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일본 기준으로 결혼식에 참석할 만큼의 친분은 아닌데다, 혼자 기나긴 피로연까지 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어색하기도 했으며 축의금도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일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지인은 결혼 일 년 만에 돌싱이 되었다.


. 일본에 살면서 딱 한 번 장례식에 간 적이 있다. 한국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장례식을..


. 앞으로도 참석할 일이 없지 않을까 싶다.


한국어 학원의 학생이라는 관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일본 어머님 3인방이 계신다. 일본에서 나를 엄마처럼 혹은 이모처럼 보살펴주신(?) 어머님 3인방 중에 가장 연장자이신 W상.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하셨던 W상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녀 없이 W상 부부와 W상의 어머니까지 세 분이 한 집에 살고 계셨고, W상도 외동딸이어 손님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집에서 장례식을 치르기로 하셨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국에서도 장례식장에 갈 일이 거의 없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단에 놓여있던 국화를 거꾸로 국화 통에 집어넣으려고도 했었다.


손님도 많지 않다고 하니 빨리 가보려고 서둘러 옷부터 찾아야 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갔던 검은색 셔츠와 슬랙스가 있었다. 혹시 몰라 가져 갔던 베이직한 검은색 구두도 있어 옷은 해결되었다. 그다음은 장례식에 가서 어떻게 하는지가 문제인데. 아무리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이라고 해도 장례식의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처럼 향을 올리는 것 같던데 국화는 없는 건지, 향은 어떻게 올려야 하는 건지, 또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일본에서도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데 집에서 치르는 장례에서 혹시 실수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야후 재팬에서 장례식 예의, 장례식 매너, 장례식 흐름 같은 단어들로 검색을 해서 내용을 숙지했다. 글로만 읽으니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불안했다.


내가 살던 사랑스러운 동네


한국어학원, 우리 집, S언니 집, W상의 집은 모두 한 동네. 수업이 비는 시간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언니와 내가 도착하자 이미 어머님 3인방은 모여 계셨고 멀리서 오신 친척분들도 함께 하고 계셨다. 경황이 없으실 텐데도 W상은 반갑게 맞아주셨고 우리를 불단 앞으로 데리고 가셨다. W상과 우리는 자연스럽게 불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장례식은 처음이지? 자, 이렇게 손 모으고 인사하면 돼"


바로 옆에 앉아 외국인인 우리를 배려해 향을 생략하고 합장만 하도록 알려주신 것이다. 속으로 안심했지만 예상치 못한 것은 바로 다음.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불단 옆에 놓인 관이 눈에 들어왔다. 괜히 긴장이 됐다.


"여보, 한국어 선생님들이 왔어. 인사해"


가까운 가족들만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고인을 생전 모습대로 관에 뉘이고 손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향초를 어떻게 올리는지만 열심히 찾아보고 왔던 터라 고인과 인사를 하게  줄은 몰랐다. 게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염을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고인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황한 한편 편안히 잠든 것처럼 보여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았다. 몰랐다면 정말 주무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가깝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면서 일어났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손님으로 오셨던 친척분들께도 한국 선생님들이라며 소개를 해주셔서 인사를 드렸는데 갑자기 한국어로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감사하무니다~"를 외치셨다. 본인들도 한국 드라마를 본다며 아는 한국말을 대방출하신 것이다. 여보세요 한 마디에 모두가 웃었다. 장례식장에서는 오히려 북적거리며 사람 소리가 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우리나 일본이나 똑같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일본은 집집마다 고인을 모신 자그마한 불단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례가 끝난 후에도 W상의 집에 간식거리를  가면  먼저  불단에 음식을 올리고 합장을 하며 인사를 드린다. 건강한 세상이 되어 다음에 찾아뵐 때는 한국에서 가져간 음식을 불단에 올리고 싶다. 마음에 들어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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