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한국어 학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약국을 하시는 Y상은 우리 아빠와 동갑이었다. 그래서 어쩐지 마음속으로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우리 아빠와 나이가 같은데 퇴근 후에 뭔가를 배우신다는 게 대단했다. 그리고 딸보다도 어린 나에게 꼬박꼬박 선생님, 선생님 불러주시는 것도 고마웠다. Y상은 예전부터 한국어를 배워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한국말이 독일어처럼 딱딱하게 들리는 게 멋있었다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들었을 때 한국어는 딱딱한 느낌인 걸까?
처음 학원에 오셨을 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을지 자신 없어하셨다. 하지만 우리 학원에는 Y상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도 많이 다니고 있다는 말로 용기를 드렸다. 어리다고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배우는 학생들은 큰 진전이 없어 알게 모르게 나의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걱정과는 다르게 Y상의 진도는 막힘없었다. 한글도 바로 외우셨고 배운 단어나 드라마에서 귀에 남는 단어들도 습득을 잘하셨다. 그러던 어느 수업 시간 "-이/가 있습니다. 없습니다"를 배우다가,
"아! '일없다'가 한국말이었네요!"
우리도 자주 쓰지 않는 북한말을 어떻게 아시는 걸까. 어떻게 아시느냐 묻자,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라고 하셨다. 규슈에 사셨던 Y상의 할머니는 그 당시에 침을 놓는 일을 하셨고 일제 강점기 때는 부산에서 몇 년을 사셨다. 아마도 부산에서의 입버릇이었던지 괜찮다는 의미로 '일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Y상은 그 말이 규슈 어느 지방의 사투리쯤으로 생각하셨다고.
이야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를 부르는 '쿠다라(くだら)'는 백제에서 많은 문물을 받아들여 큰 나라라는 의미로 쿠다라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하찮다, 시시하다는 뜻의 '쿠다라 나이(くだらない)'는 백제의 것이 아니면 하찮다는 뜻으로 쓰였다는 '설'도 있다. 나라현의 어원 또한 한국어의 나라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백제와 교류가 많았던 아스카시대 정치의 중심지가 지금의 나라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싫든 우리는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 인생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