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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퉁퉁증 Jul 27. 2022

영화 신세계마저 귀엽게 만드는 일본의 욕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고 싶어?”




일본에 살 때 우리 영화 신세계가 개봉했다. 토요일 오후 느지막이 일이 끝나면 저녁까지 놀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 심야 영화를 자주 보러 갔었다. 보고 싶었던 영화이기도 했고 영화 속 수많은 욕을 어떻게 일본어로 번역했을지가 궁금했다. 영화는 좋았고 일본어 자막은 귀여웠다.


일본에서 많이 쓰는 욕을 직역하자면 기껏해야 '젠장, 똥, 바보 자식, 이 자식, 반죽여놓는다, 시끄러워, 무슨 짓이야' 따위의 말들이라 우리에겐 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부모님의 안부를 여쭙고, 동물을 찾아대며, 생식기의 건강을 찾아대는 우리의 욕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이것들을 이리 조합하고 저리 조합하면 단번에 수십 개의 욕도 창조해낼 수 있다. 곱씹으면 살벌하다.


기억을 더듬고자 영화 신세계의 일본어 자막을 찾아보니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고 싶어?'라는 대사를 '죽고 싶어?'라고 번역해두었다. 과연 일본어 다운 번역이었다. 그 밖에도 찰진 욕들이 전부 젠장, 똥, 이 자식 정도로 번역되어 있었다. 실제로 일본에 살 때도 욕다운 욕을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야쿠자 영화를 봐도 목소리만 깐다거나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들고 얼굴만 들이대는 정도일 뿐이다.


일본어는 왜 이렇게 욕이 귀여울까? 대학 때 교수님이 일본은 말에도 신이 있다는 언령 신앙에 대해 언급하셨던 기억이 있다. 차별적인 언어를 금지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고 메이지 시대의 언어정화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본 웹페이지에서는 일본인은 앞에서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뒤에서 험담을 하기 때문이라는 다소 자조적인 코멘트도 보인 반면, 일본인이 수치심을 아는 유일한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자아도취형 코멘트도 있었다. 일본어에 욕이 적은 이유에 대한 확실한 정답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본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귀재라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익숙한 나는 일본어의 돌려 말하기 표현에 익숙해지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일본어 학교에 다닐 때 사무실 선생님에게 "이렇게 하면 안 돼요? (こうしては ダメ ですか。)"라고 묻자 선생님은 "인정할 수 없어요. (認めません。)"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되면 된다, 안되면 안 된다로 확실히 대답해주면 되는데 인정할 수 없어요라는 약 올리는 듯한 말에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왜 안돼요? (なぜ ダメ ですか。)" 돌아오는 말은 역시나 “인정할 수 없어요”였다. 싫다는 말도 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꺼려진다(苦手) 거나 좋아하지 않다고 표현한다. 그것도 모르고 일본어 실력과 자신감이 반비례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싫다는 말을 참 많이도 했다.


여전히 알면서도 입에서 잘 나오지 않는 표현이 있다. 바로 내가 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허락을 받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제가 발표하겠습니다"를 "제가 발표해지는 것을 받겠습니다 (私が発表させていただきます。)”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은 겸양의 표현이기도 하다. "거기 가서 받아주세요"는 "거기 가지는 것을 받고 받아주세요 (そこに行ってもらって受け取ってください。)"가 된다. 직역을 하려야 할 수 없는 일본어의 겸양어이자 돌려 말하기이다. 그렇다면 “제가 말해볼게요”는? “제가 말해짐을 받겠습니다 (私が言わせていただきます)”이다.


이런 대화 패턴을 알면서도 일본인이 애매하게 말하면 퉁퉁증이 발동한다.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말하는 일본인을 만나면 그것 나름대로 이상하게 느껴진다. 요상스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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