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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퉁퉁증 Aug 21. 2022

한일전이 끝난 후 싸우던 한일 부부

내 눈앞에서 싸우지 마

“아오 짜증 나!”


며칠 후면 나의 응원팀 전북 현대가 빗셀 고베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아챔) 8강 경기가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2014년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 일본에 있어서 제발 요코하마나 가와사키가 아챔에 올라와주길 바랐는데 고맙게도 요코하마가 올라와주었다. 4월, 전북 현대가 요코하마 마리노스를 상대로 아챔 조별리그 어웨이가 열렸다. 이미 홈에서 이기고 온 터라 마음 놓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학원에서 일하던 K언니도 경기를 보러 간다고 했다.


K언니는 남편이 일본인이었다. 축구에 달리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국팀이 일본팀과 경기를 하기 때문에 경기를 보러 간다고 했다. K언니에게 이것은 단순히 아챔이 아니라 한일전이었던 셈이다. 나는 일찌감치 원정 응원석 쪽으로 예매를 해놓았는데 K언니 부부는 홈 응원석 쪽이 아닌 가운데 자리에 앉는다고 했다. 경기전에 간단히 메시지만 주고받고 각자의 자리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그리고 결과는 패.


분한 마음을 삭히며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K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너무 분해서 이대로는 집에 갈 수 없다며 술이라도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언니 부부를 만나 근처의 이자카야로 갔다. 언니의 남편은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 그날 처음 만난 사이니 할 말이랄 게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어를 모르는 언니의 남편을 두고 언니와 한국어로만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게 열심히 일본어로 떠들어댔는데 문제는 K언니였다.


언니는 아무래도 진 게 너무 분했던 모양이다.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 계속해서 한국어로 얘기를 했다. 


"아오 짜증 나!!"


"일본이랑 경기해서 지는 거 진짜 싫다고!!"


아무리 한국어라고 하더라도 언니 남편이 무슨 얘기 하는지 분위기로도 다 알 텐데. 하지만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신기했던 것은 언니 남편의 반응이었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오히려 언니를 귀엽게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절대 귀찮다거나 무시하는 그런 태도가 아니었다. 적어도 제삼자가 보기엔 그랬다. 오히려 난처한 건 나였다. 내가 얼마나 이 경기를 기다렸는데! 필요없을 줄 알고 챙겨오지 않았던 전북의 유니폼을 입고 가기 위해 급하게 집에 부탁해 유니폼까지 EMS로 받았는데! 홈에서는 이겼으면서! 우리 팀이 져서 분한 건 나인데! 괜히 언니의 남편이 신경 쓰였다.


그래도 언니의 남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일본인의 입장에서 한일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우리의 그것과 다를 수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하라거나, 짜증 내는 기색이 내비치지 않았다. 많은 한일전 때마다 집안이 시끄럽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언니의 남편이 여전히 그런 태도라면 서로 기분 상할일은 없을 것이다.


나중에 K언니가 말했다. 셋이 만났을 때 내가 일본어로 얘기를 잘해줘서 좋았다는 것이다. 언니의 친구들에게 남편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언니가 불편했다는 얘기와 한국의 가족들을 만나도 모든 말을 언니가 통역을 해줘야 하니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한국어를 배우게 하려고 학원에도 보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과연, 국제 결혼의 고충이 느껴졌다. 국제 결혼을 한 부부들을 보면 커뮤니케이션을 더 중요시하는 여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 같다. 그 대신 언니 부부는 일본에 살고 있는 만큼 언니의 남편은 언니를 배려해준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K언니는 며칠 후에도 경기를 챙겨볼까? 이번엔 언니가 크게 한 번 웃을 수 있길. 우리 전북 선수들이 자신들의 기량으로 잘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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