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적당한' 일본어로 먹고 살아가는 에피소드.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1.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2. 전공을 일본어 교육으로 정하고 3. 3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친 후 4.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는 나에게 주변 친한 사람들이 일본에 대한 사소한 것들을 자주 물어본다. '나 일본 여행 가는데 관광객이 가는 곳 말고 현지인이 가는 식당 알려줘', '이거 일본에서 사는 게 더 싸다면서? 일본에서는 얼마야?', '일본 사람들은 이렇다는데 진짜야?' 등등.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편인데 농담으로 돌아오는 말은 "이거 완전 친일파 구만." 아니 니가 물어봤잖아 이 말에는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 일본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의 직전 회사는 일본 브랜드 공식 수입사로, 입사 한 달 만에 일본 보이콧 이슈를 만났다. 내가 속했던 사업부는 장기적으로 확장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내가 입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장 인원을 줄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 분위기는 찐득한 습기처럼 축 가라앉아있는데 하필 자리도 임원실 바로 앞. 내가 앉은 의자가 쿠션 의자인지 가시 방석 의자인지. 엉덩이가 따가웠고 괜히 잘못도 없는데 회사에 내가 다 송구했다.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에 미리 잡혀있던 일정들이 줄줄이 캔슬이 됐다. 거래처들도 일본 제품이라 미안해하며 난색을 표하는데, 사회적 분위기가 이러하니 방법이 없었다. 반면에 일본 제품이어도 예정된 일정이니 그대로 진행해보자는 업체들도 있었는데,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우리가 조심스러워서 일정을 캔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노노 재팬 리스트가 오르기 시작했고, 일본 제품이라 안 사요~ 하는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며 반박을 할 수도, 설득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마음이 새까매졌다. 상황이 야속했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많은 길 중에 일본어를 선택한 나의 운명일지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 브랜드가 누구나가 다 아는 그렇게 인지도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로라도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그 해에 성과급이 사라졌고 꽤 값이 나간다고 알려진 명절 선물도 없어졌다. 팀장 및 임원급을 소집해 법인카드를 효율적으로 사용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심상찮은 분위기에 직원들이 동요되는 것이 보였다.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의 생계가 걸린 일이지만 나 또한 역사적 사실에 공분하고 뻔뻔한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난다. 동시에 무한한 친절을 베풀어준 일본의 지인들이 떠오른다. 별로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던 내가 일본어에 관심을 가진 후에 생겼던 좋았던 일들이 너무 많았다.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인다. 그나마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것은 일본어 하나밖에 없는데.. 이런 내가 일본어로 먹고 살아가는 한, 일본과 관련된 회사를 다니는 한 역사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팬데믹에 가려졌지만 여전히 보이콧 분위기는 남아있다. 그렇지만 나는 일본어를 하게 되면서 가질 수 있었던 개인적인 기회와, 일본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 바다 건너에서 아직까지도 연락 중인 나의 첫 회사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다. 힘들 때 큰 위로가 되었던 일본 작가의 글과 한 때 깊이 빠졌던 일드와 영화까지도.
이렇게 써놓으니 일본어 네이티브 같지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잘하지 못하고 적당~히만 할 줄 안다.
그래도 일본어로 먹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