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동시신호

카페 2층에서 바라본 하천과 양쪽의 대비된 모습

by 가을웅덩이

11시에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참여하고, 저녁 7시에 친정어머니 팔순 모임을 기다리며 도시 한가운데 있는 투썸플레이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작은 사거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보행자 신호가 사 거리에 동시에 켜진다.

지팡이를 짚고 느리게 걷는 어르신, 노란 옷을 입은 강아지와 산책 나온 할머니, 급히 뛰어가는 어린아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길을 건넌다. 신호 앞에 서서 기다릴 때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는데, 2층에서 바라보니 초록불이 켜지는 간격이 아주 짧았다.

언제부터인가 거리의 단보도에 초록불이 동시에 켜지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길을 건널 수 있어서 편리해졌다. 우회전하는 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안심하고 건너게 된다. 문명은 사람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천을 기준으로 대비되는 문명이다. 이마트와 금융단지가 있는 곳은 전봇대가 사라졌다. 어두워진 도로를 지키는 가로등이 우아하게 서 있다. 반면에 하천 반대쪽에는 늘어선 전봇대와 전신줄로 하늘이 산산조각 나 보였다. 늘어난 전신줄이 이리 묶이고 저리 묶여서 창가에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아찔해 보인다. 공사로 인해 도로의 반쪽이 막혀서 더 적막한 모습이다.

삶의 이면도 양면성을 보일 때가 있다. 화려한 조명으로 주목받을 때 배고프고 지친 저녁을 맞이하기도 한다. 양면성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그럼에도 삶의 수레바퀴는 무심하게 흘러간다. 냉정하게 흘러갈 때도 있다. 시간이라는 것도 그렇다. 양면의 모습을 보인다. 치료의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무심한 시간이 되기도 하다.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이기에 선하고 기쁜 것을 중심에 두려고 한다.

크리스마스!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날이다. 세상죄를 짊어지기 위해 오신 날이다.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삶과 죽음은 양면의 칼을 떠 올리게 한다. 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보행자 동시 신호처럼 막힌 공간을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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