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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데이트 2-4

휴대폰 충전을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

by 가을웅덩이 Mar 06. 2025

수요일은 오전 근무라 오후에는 미루어둔 볼일을 보게 된다. 우체국을 들렀다가 영축산 설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시냇가 산책길로 나갔다. 시내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통도사 산문이 나오는데 그 길에서 영축산이 가장 잘 보인다. 며칠 동안 내린 눈으로 설경을 이룬 산봉우리에 수채화가 내려앉았다.  영축산과 건물이 어우러진 구도를 담기도 하고 소나무와 시냇물이 함께 들어가는 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안개가 살짝 드리운 산봉우리는 어디에서 찍어도 멋스러웠다.


내친김에 통도사 홍매화도 보려고 무풍한송로를 걸었다. 올해는 늦은 추위로 통도사 홍매화가 늦게 피고 있다. 2월 8일에 처음 홍매화를 보러 갔을 때는 꽃봉오리들만 가득하고 꽃이 피지 않아서 실망하고 내려왔다. 그다음 주 토요일에 갔을 때는 두 송이가 피어있었는데 한송이는 활짝 피었고 한송이는 두 잎 정도 펼친 봉오리였다. 활짝 핀 한송이에게 남편은 전교일등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일주일을 보내고 세 번째 찾아갔을 때는 6송이 정도 피었고 지난주 토요일에는 10% 정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며칠 동안 눈이 내리는 바람에 잘 견디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걸음이 빨라졌다.


무풍한송로를 한참 걷다가 핸드폰 시계를 보는데 화면이 어두워졌다. 배터리가 4% 밖에 되지 않아서 화면이 흐려지고 있었다. 홍매화 사진을 담으려고 가는 길인데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며 잠시 망설였다. 걸음을 옮기며 고민하던 중 무풍한송로 중간에 위치한 카페를 떠 올렸다. 송수정 카페! 카페에 들어서니 5시에는 마감을 하는데 괜찮은지 물어왔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충전을 하기 위해 왔다며 초코라떼 한잔을 주문했다. 충전기를 연결하고 시냇물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시냇가에 난간을 만들고 앉을 수 있도록 늘어서 있는 의자들이 보였다. 테라스처럼 만들어 둔 곳이다. 소나무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소박한 야외 공간이지만 푸근해 보였다.


핸드폰이 충전되는 동안 유리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며 나를 챙기는 시간을 가진다. 새벽에 카톡으로 날아온 성경 말씀이 떠 올랐다.   

1일 - 구원의 하나님(열왕기하 6: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교회에서 진행되는 '순례의 길'이란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데 사순절동안 이어진다. 매일 카톡으로 말씀이 날아오면 묵상글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남기는 프로그램이다. 오늘이 첫날이다. 악몽으로 잠이 깨어 심란할 때 날아온 말씀이라 위로가 되었다. 걱정거리가 하나둘 씩 찾아와서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불말과 불병거가 둘러싸인 내 삶을 떠올리니 모든 것이 감사로 바뀐다.    


카페에서 일하는 분이 말을 걸어왔다. 

"지금은 어디에서 약국을 하나요?"

"요양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약국을 접은 지 13년이 흘렀는데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서 놀랐다.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져서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는 친근하게 들렸다. 마침 가지고 있던 월간에세이 책을 한 권 전해주고, 송수정 카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생각을 담그는 시간' 전자책 PDF 파일도 선물해 주었다. 충전된 해드폰을 들고 카페를 나서는데 몸과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홍매화를 보려 가는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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