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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ak Apr 29. 2024

결혼식 축사를 하다!

제자들의 결혼을 축하하며

 예전엔 결혼식에서 주례를 모시고 결혼식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에 요즘은 주례를 모시고 주례사를 듣는 것이 거의 없어진 듯하다. 주례 대신 결혼 당사자들이 결혼을 맞이하는 느낌과 지나온 과정들을 얘기하고 부모님 중 누군가가 축사를 하고, 축가로 이어지는 결혼식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축사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내 나이 아직 50도 되지 않은 나이에 처음 만난 지 17년이 지난 제자들이 축사를 해 주십사 권하게 되었다. 그날 술을 너무 즐겁게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축사에 대한 부탁을 아무 고민도 없이 즐겁게 허락하고 말았다. 


뜻밖의 만남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붙어 있다. 정문도 같이 사용하고, 강당도 같이 사용한다. 물론 학생들도 대부분이 주변에 거주하는 학생들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더 가까이 사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우리 직장 사람들은 술약속을 웬만하면 학교 주변으로 잡지 않는다. 거기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 우리 학교 졸업생일 수도, 술에 취해 집으로 가다가 마주치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 학생일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주로 직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술약속을 잡거나, 학생들이 꿈나라에 들 시간에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향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러던 7-8년쯤 어느 날, 학교 주변 맛집에서 같은 교과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가게에 유일한 손님이었던 20대 커플이 나를 알아보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졸업한 지 십수 년이 지나도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얼굴에는 그때 그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 보통이라 졸업생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간단히 얘기를 나누며 지나온 시절을 얘기하다가 자리로 돌아왔고, 화장실을 가는 중간에 제자들의 술값을 계산해 줬다. 나가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헤어졌는데, 10분 뒤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테이블에 나타나 술 깨는 약을 한 아름 사 와서 주고는 사라졌다. 고마움을 표하고 다음번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동료들이 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을 라나 모르겠다. 


이후의 만남과 결혼식 축사

 SNS가 좋은 게 멀리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자주 만나지 못해도 마치 가까운 친분이 있는 것처럼 생각나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간간이 SNS에서 일상을 볼 수 있었고, 중학교 동기와 사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졸업한 아이들과 모여 술 한잔 기울이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또 한 번의 모임에서 다른 제자들을 포함해서 술자리가 있었는데, 이건 뭐 은퇴한 은사를 모시고 술 마시는 것처럼 제자들이 서로 산다고 해서 약간의 불편한 마음과 기쁜 마음이 공존하며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2달 뒤에 결혼식을 한다고 얘기를 들었고 다들 결혼을 축하며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이제 제자들의 나이가 31살이니 요즘 결혼하는 나이에 비하면 빠른 편이었고, 요즘 결혼 트렌드에 맞게 주례 없이 결혼식을 한다고 했다. 술자리에는 그날 축가를 부를 제자도 와 있어서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축가 실력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그 술자리에서 신부가 될 제자가 축사를 부탁했는데, 나는 그냥 술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얘기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축사를 수락해 버리고 말았다. 술자리가 끝나고 헤어진 뒤부터 축사에 대한 부담이 맘속에 10% 이상 계속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부담이 된다고 말을 흘렸는데, 부담되시면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약속은 약속인지라 하기로 하고 대략적인 축사에 대한 제자들의 정보를 받아 축사를 준비했다. 

축사를 받아들인 문제의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결혼식 축사

 시간은 흘러 흘러 결혼식이 하루하루 앞당겨지고 있었고, 축사에 대한 부담은 이제 30% 정도로 확대되었다. 주어진 자료를 통해 축사를 손보면서도 내가 과연 축사를 할 위치인가를 계속 고뇌하곤 하였다. 주로 축사는 친한 친구나 가족 중에서 하는 것인데, 오랜만에 만난 졸업생을 대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해 계속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축사라는 것이 둘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을 담는 것이고, 나는 제자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자리이니 주어진 기회이지 시험을 제대로 치르기로 하고 축사를 썼다. 유튜브에서 축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파악하고, 내용을 두어 번 수정하며 축사도 완성했다. 물론 외워서 하고 싶었지만, 긴장된 마음에 축사를 망칠 것 같아 A4용지에 축사내용을 출력해서 간간이 내용을 보며 축사를 이어나갔다. 결혼식을 하는 제자들보다 더 긴장한 거 같았다. 축사를 하면 먼저 연락해서 결혼 진행 중 축사의 순서라든지, 시간이라든지, 다양한 정보를 줘도 긴장을 할 텐데,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준비할 것도 많아서 이해가 됐다. 나도 결혼은 해 봤으니 그 복잡한 준비와 정신없음을 이해하고 결혼식 축가를 무사히 마쳤다. 제자들이 친구들 사진 찍는데 같이 찍자고 해서 사진도 찍고 간단히 식사도 하고 결혼을 축하하며 결혼식장을 나섰다. 이렇게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축사를 마무리하고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준 제자들에게 고마움을 남겼다. 긴장된 맘을 뒤로하고 술자리에서 챙겨둔 담배 한 대를 피우며 긴장을 날렸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긴장이 없는 편안한 맘으로 오후 낮잠을 꿀같이 잤다. 

 인생에서 또 하나의 경험이 이렇게 지나갔다. '재미있게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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