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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Jan 27. 2024

이성을 사랑한다는 거

금녀禁女 혹은 금남禁男

#.

ㅡ이래도 사랑하겠느냐.


볼그레한 볼, 윤기 나는 머리칼, 사뿐히 다가오는 걸음걸이의 그녀가 점점 늙고 야위고 주름살이 늘어나더니 그대로 시신이 되어 탁한 액체로 고여가며 흐물러진 살갗을 날리고 해골로 남았다.


고왔던 모습, 여리고 깨끗한 심성, 자신이 한때 지녔던 그것들은 스스로 소중히 하기 어렵다. 저절로 있다가 저절로 닳아 없어진 다음에 자라난  것들, 모든 게 여자이고 싶어서  늘어 세워진 화살촉처럼 날카로운 본능과 집착.   


ㅡ사랑받고 싶어.


심장에 품었던 갈망이 여자의 혈육, 여자의 우인, 여자의 교사, 여자의 남자, 여자의 가족, 여자의 이웃 속에서 공격적으로 독을 품고 마구마구 쏘아진다. 안간힘을 써서 자제력을 발휘하여 화살의 방향을  모두 자신에게 되돌렸을 때는 참으로 유감이지만 지나치게 살기등등하다.


그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시신이 진물 속에서  해골만으로 말끔해지기 전에, 손등과 발등 목과 얼굴 심지어는 뱃가죽까지 주름꽃이 피어나 퍼지기 전에, 아니 누군가의 여자가 되어 둥지를 차지하기도 전에, 아니 그보다도 훨씬 일찍  들꽃처럼 하늘하늘 흔들리는 소녀가 되기도 전에 너무나 일찌감치 스스로를 질식시켜 창백해지고 만 것이다.


말하자면 지레 열렬해져서 뻗쳐 나온 집념들 넝쿨이 되어 자기자신의 목을 친친 휘감으며 숨을 조여온 것이다.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면, 살아 있어도 이미 숨이 끊어진 거나 다름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몸은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부터 신선한 호흡이  끊어졌고 뇌수 가득 염증으로 가득 차올랐다. 비유하자면 멀미였다.


지독한 멀미. 임계선 이상으로 차올랐을 때 나는 내 형식을 저버렸다. 한때 여자였음에 그래서 집착했음에 조금치도 의미가 없다고 깨달았다. 그 순간 그녀는 남자로 변했다.  


ㅡ 그래도 사랑하겠느냐.


남자는 도리질한다.


목까지 차오르는 염증에서만은 헤어났으나 다시는 환상을 얹고 이성을 사랑할 수 없다. 마치 지나온 풍경을 보듯이 칡덩굴처럼 얽혀 사랑이란 이름의 감각을 망하는 아득한 골짜기를 바라본다.

갈애에  불태우다 끝난다면 허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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