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갈망으로

불완전함에 찾을 수 있는 생명의 감각

by 노에시스
요한복음 12:1~11[200주년 신약성서]
12:2 거기에서 예수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었고 라자로는 예수와 함께 음식상을 받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12:3 마리아는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바르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그 집은 향유의 향기로 가득 찼다.




이 시대를 도파민 과잉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클릭 몇 번에 강한 자극을 얻기도 하고, 많은 걸 효율적으로 해낼 수도 있습니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되고,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되고, 연애하지 않아도 되고, 식당에 가지 않아도, 편리하고 빠르게 원하는 걸 획득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으로 세계와 감각으로 마주해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 생략됩니다.



‘나는 왜 원하는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같이 존재와 갈망이 날 것으로 만나는 순간을 빼앗깁니다.



삶을 돌아보면 아직은 거칠고 불완전하며 미완성된 이야기투성입니다. 그런데 점점 더 가공되고 완성된 상품들로 우리 존재가 뒤덮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존재의 근원적인 갈망이 채워지는 듯한 착각 속에 살게 됩니다. 그리고 상품들처럼 가공되어야 할 것 같아서, 거짓된 삶을 차곡차곡 쌓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사로와 마리아, 가룟 유다가 등장합니다. 나사로는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난 자신을 살려주신 예수님의 옆에 앉아 잔치를 즐깁니다. 예수님의 생기가 깃든 살갗이 그의 몸을 스치고, 애틋한 그분의 눈빛을 마주하며 그분을 갈망할 때, 그에게 생명을 얻은 기쁨이 다시금 스며듭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가장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정성스럽게 고운 머리칼로 닦았습니다. 향기와 부드러운 촉감으로 채워진 오묘한 그 행위에는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담겼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 둘의 갈망이 진실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가룟 유다와 대비시켜 그의 위선적인 언행 다음으로 공금을 가로챘던 도둑이었음을 폭로합니다.



거짓된 갈망은 만들어진 삶 속에서 방랑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진실한 갈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압니다. 그리고 그 진실한 갈망은 인간을 주님께로 향하도록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갈망했던 순간이 있었는지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주님을 갈망하는 감각을 잊고 산 건 아닌지, 따스한 주님의 시선과 손길이 진실로 저의 감각이 되기를 갈망했는지,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 부끄러움 없이 진실로 저를 내어드리려는 갈망을 품었었는지, 생각해 볼 때 주님 앞에 부끄러움만 남는 듯합니다.



오, 주님. 주님을 향한 진실한 갈망으로 저를 인도하소서. 만들어진 거짓된 삶이 아니라, 진실한 삶과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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