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 이다.
이제는 진부해진 명언이지만, 새로운 선택을 앞두고 있을 때면 불쑥불쑥 떠오르는 문구.
하나의 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지는 않을지, 그렇게 수많은 틀린 C들이 모여 나의 인생을 수렁으로 끌고가는 것은 아닐지 겁이 덜컥 난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일단 될때까지 미뤄두'곤 했다.
하지만 의대입시를 앞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3개월 남짓 반복한 결과, 선택에 있어 나만의 규칙이 생겼다.
1. 고민에 데드라인을 정해둘 것.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같은 고민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2. 두 선택지가 고민된다면, 각 선택지의 장단점을 종이에 써볼 것. 나는 어떤 단점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가? 어떤 장점을 놓칠 수 없는가?
3. 고민을 객관화해볼 것. 내 친구의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한발짝 멀리 떨어져 생각해보자.
4. 일단 선택했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나의 선택을 옳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것. 결과에 대한 걱정은 그 뒤로 미뤄둘 것.
특히 내가 선택을 내리는데에 가장 도움을 받았던 것은 2번 규칙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의대진학 후 어려움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1. 가방끈이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닐까? 돈은 언제벌지?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경제활동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또 다시 부모님께 의지해서 학교를 4년이나 더 다닌다고? 이미 6년이나 학교를 다녔는데, 진작 취업한 주변친구들에 비해 인생이 너무 뒤쳐지는 것 아니야?
2. 의대에 진학해서 바쁘게 공부하다 보면 나의 일상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공부 외에도 즐기고 싶은 취미도 많고 때 되면 결혼도 하고싶은데, 눈떠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는 것 아니야?
3. 약대 마지막학년은 동기들과 학교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인데, 또 다시 입시를 하면서 소중한 한해를 다 날려버리는 것 아닐까?
가만히 앉아, 종이에 써놓은 고민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크게 세가지 생각을 하며 거기에 진지하게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구체화해보자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경제생활을 시작하지는 못하지만 과외를 병행하면 충분히 감당강능한 수준이었다.
두번째는 굳이 양자택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의대에 진학한다고 해서 내 모든 자유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가 인생이 된 만큼 더 지혜롭게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입시를 한다고 해서 내 마지막 한 학기를 날려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잘 쪼개서 입시준비와 친구들과의 시간, 각각에 집중하면 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내가 과연 어떤 고통을 기꺼이 견딜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이는 마크맨슨의 <신경끄기의 기술>을 읽고 굉장히 와 닿았던 부분인데,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나의 최우선 가치를 골랐다면 이에 따르는 부수적인 어려움에는 신경을 끄고 나의 선택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여기서 '1년이 아까워서', '떨어질까봐 무서워서', '친구들에 비해 뒤쳐질까봐' 라는 이유로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아니, 당장 내년에 얼마나 후회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후회의 감정은 견디기 어렵겠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다잡고 수험생활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세상에는 좋은 선택을 내리기 위한 수 많은 조언들이 있다.
많은 책을 뒤적거리고 유튜브 영상들도 클릭해보았다. 핵심 메세지는 나에게 맞는 선택을 내리려면 많은 경험들이 필요하며,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결국 수많은 선택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서 소개한 마크 맨슨은 저서 <신경끄기의 기술>에서 '우리는 결정적인 정답을 구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틀린점을 조금 깎아내, 내일은 덜 틀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고 이야기했다. 나의 삶이 ‘옳아야 한다’는 확신에 집착하면 믿음이 배신당할 까봐 오히려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우리는 기존 믿음에 집착 하기보다 미래를 스스로 일구지 않을 때 나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질문하고 의심해야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평생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라고 한다. 혹시나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내 선택이 조금 틀렸다 할지라도, 나를 탐구하는 평생의 긴 여정을 탄탄하게 다듬는 하나의 자원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새로운 선택을 찾아 출발하면 될 일이다.
매 선택이 너무 무겁다면, '결국 어떻게든 인생은 살아지더라' 하는 태도도 좋다.
하나의 선택은 때때로 인생의 갈림길에서 큰 방향의 전환을 만들지만, 결국 내 인생의 대부분을 구성하는건 그 길가에 핀 꽃들 한송이, 내가 걷는 한걸음, 옆에서 함께 걷는 주변 사람들이다. 내가 어떤 길을 가던 나의 중심이 잡혀있다면 그렇게 두려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요즘 내 주변에는 진로계획부터 점심메뉴 선정까지 선택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나도 그들 중 하나로서 매번 선택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혼란스러워한다. 어쩌면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그 책임을 져야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뜻 자신있게 고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난 아직 어리고 경험해본것이 별로 없는걸.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를 선택해야 피드백이 있고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뭔가를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옳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보자. 결과는 그 이후에 맡겨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