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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지, 입맛도 없나?

[리뷰] 가난한 노인들의 유쾌한 무전취식 이야기, 영화 <사람과 고기>

by 강지영

(사진출처 : 영화 <사람과 고기>의 홍보사진)


올 가을은 비와 함께 찾아왔다. 오락가락 내리던 가을비,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빗속에 늦은 산책길을 나섰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걸음은 나름대로 분주히들 오갔다. 그 속에 한 여성 노인이 폐지를 가득 담은 리어카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었다. 빗물에 젖은 폐지 더미, 보기만 해도 그 무게가 얼마큼인지 짐작이 간다. 20(초), 19(초), 점점 줄어드는 신호등 숫자. 양손에 든 장바구니를 어깨에 걸고, 손수레를 뒤에서 밀었다. 여성 노인은 뜻하지 않게 바퀴가 잘 굴러단다고 느꼈는지 뒤를 돌아본다. 폐지를 높이 쌓아 실은 터라 뒤에서 밀고 있는 나를 못 본 것 같다. 다행이다. 초록불이 꺼지기 전에 둘 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각종 채소를 파는 여성노인이 있다. 폐지 줍기, 좌판에서 채소 팔기, 영화 <사람과 고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일상에서 하는 일이다.


웬만하면 영화를 두 번쯤은 봐야 리뷰를 쓰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어려웠다. 바로 접근성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영화는 상영관이 많지 않다. 검색 끝에 찾은 상영관도 우리 집에서 멀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에서 영화를 보았다.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서야 도착한 곳이다. 주안역에서 내리고도 큰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상가로 걸어 들어갔다가 지상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서 또 사백 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바로 '영화공간 주안'이다. 주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먼 길을 가서 본 영화는 양종현 감독의 <사람과 고기>이다. '사람'과 '고기'라니,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들을 조합해 놓으니, 심오한 내용이 들어 있을 것 같다. 호기심이 일어났다.


제목만 보고 상상했던 영화와는 달리, 영화 <사람과 고기>는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거나 스토리가 명확한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가볍게만은 볼 수도 없다. 코믹한 장면 때문에 보는 동안에는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다 보고 나면, 몇 가지 장면이 마음속에 남아 슬픈 감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남성 노인 두 명, 여성 노인 한 명이 주요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 등장하는 이들도 그렇다. 세 명 다 어려운 형편이긴 한데, 둘은 같고 하나는 다르다. 두 명은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폐지를 줍는 남성 노인이다. 여성 노인 한 명은 자신의 생계는 물론, 지방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손자의 용돈까지 챙기면서 살림을 꾸려간다. 이렇듯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노년에도 드러난다. 여성의 '육아'는 남성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두 남성 노인이 폐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몸싸움까지 벌어진다. 그곳이 하필이면 여성 노인이 채소를 파는 좌판 앞이다. 커피 한 잔보다는 밥이 먹고 싶었던 노인. 셋이서 함께 오랜만에 소고기 뭇국을 먹으며 잊었던 웃음을 웃는다. 고기는 역시 불에 구워야 제맛이라는 듯이 외식을 하자는 제안에 따라 고깃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외로운 노년에 친구와 약속이 생겼다. 문제는 돈이 없는 것. 그럼에도 맛있게 고기를 먹고 음식값은 내지 않고 음식점을 도망쳐 나온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당연히 두려워하고 어두워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그들에게 생기가 돈다. 그래도 경찰관이 눈에 보이면 움츠려든다. 양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일탈은 분명 범죄임에도 관객도 유쾌하다. 잡히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이게 영화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분명히 음식값이 없으면서도 맛있게 먹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본다.

'우리가 돈이 없지, 입맛도 없나?'


무전취식을 하면서도 그들은 행복하다. 음식점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그들이 한 대사는 이렇다.

"살아 있어. 살아 있어. 나만 그래?"

"나도 그래. 죽어라고 뛰니까 젊어진 것 같다."

"인생을 쭈욱 돌이켜 봤는데, 형님이랑 여사님이랑 고기 먹으러 다닐 때가 제일 좋았어."

이는 단순히 고기를 먹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셋이서 같이 친구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하면서 생긴 행복감이 아닐까 한다. 한편으로 엉뚱한 상상도 한다. 그 옛날, 원시인들은 힘들게 사냥을 해 온 고기를 가족끼리 부족끼리 둘러앉아 먹지 않았던가. 그 모습을 상상하면 세 노인이 일탈에서 오는 만족감이 상상이 된다. 예로부터 잔치가 있을 때나 손님 대접을 할 때는 고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네 삶에서 고기란 '접착제'요, '윤활유'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연대의 힘! 연대하면서 여성 노인도 목소리를 낸다. 여성 노인의 분노에 찬 말도 마음에 와닿는다.

"늙었으니까 세상 사람들 불편하지 않게 한 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가 그대로 죽으라고?"


영화를 다 보고 며칠이 지난 후인데도 나는 두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먼저, 남성 노인의 집에 어느 단체에선가 수의를 가지고 두 여성이 방문한다. 수의, 인간이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입는 그 옷. 그걸 받는 노인은 황당하고 씁쓸하다. 홀로 살다가 죽으면 분명히 필요한 물품이겠지만 수의를 주며 두 여성 방문객은 웃는다. 웃으며 인증숏을 찍는 행위가 낯선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가난한 독거노인은 하루하루가 힘들다. 게다가 간암까지 걸렸다. 치료는 포기하고 근근이 사는 중이다. 사는 것도 힘든데, 죽을 준비를 하라니. 조용한 '폭력'이 아닌가.


또 한 장면은 남성 노인이 옛 친구 연락을 받고 찾아간다. 허름한 단칸방에 옛 친구가 누워 있다. 방문객이 들어갔는데, 여전히 누워 있다. 병명이 뭐냐고 물으니, 굳이 말하자면 영양실조이려나,라고 한다. 정황상 극단적 선택인 것 같다. 오늘 느낌에 '갈 것 같아서' 장례비를 준비해 놓고, 친구에게 자신의 장례를 부탁하려고 한 것이다. 연락할 가족이 없으니, 연락이 뜸했던 친구를 부른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굶어 죽는 것이 좋은 이유를 말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굶어서 죽는 것이 아프지도 않고 힘도 들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장례비를 마련해 놓은 친구에게 찾아간 사람이 말한다.

"자식, 너 좀 멋지다. 오늘내일 안 죽고 계속 살아 있으면 나도 기다려야 되는 거냐?"

슬픈 현실에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장면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도 인생의 여러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세상이 불공평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다. 딱 하나 공평한 것이 있다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사는 것은 불공평해도 죽는 것은 공평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답게 죽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는 것. 먹을 것이 지천인 풍요의 시대에 굵어서 죽겠다는 슬픈 노인의 처지를 생각한다. 이 영화, 상영관을 대폭 늘려서 많은 이가 쉽게 찾아가 관람했으면 좋겠다. 젊음과 늙음! 나는 이 단어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문장이 있다. 영화 <은교>에 나오는 대사이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가난한 노인과 함께할 수는 없어도 그들에게 관심은 가질 수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다 같은 '사람'이니까.


common (2).jpg 영화 <사람과 고기> 광고지 (사진출처 : 영화사 도로시)

영화 <사람과 고기>

감독 : 양종현

출연 : 박근형, 장용, 예수정

제작 : 영화사 도로시

배급 : 트리플픽쳐스

개봉일 : 2025.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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