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비롯한 시각 이미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거나, 때론 너무 많은 말을 합니다. 페이스 북이나 트위터에 사진을 올릴 때 ‘다른 사람도 이 사진을 보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라고 믿는다면, 대체로 오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촬영자는 사진 속에 담지 않았지만, 감상자는 언제든 꺼내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사진 속에 항상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에 생각을 담는 방법에는 두 가지 상반된 경향이 있습니다. 보도사진과 예술사진이 그것입니다. 신문사진을 비롯한 보도사진은 전달하려는 내용이 모호해지지 않도록 합니다. 반면 예술사진은 사진 속 내용이 단정적이 되는 것을 피합니다. 보도사진이 항상 제목과 설명을 달아 다른 의미가 끼어들지 못하게 막는다면, 예술사진은 어느 정도의 모호함을 권장하고 감상자에게 해석의 자율성을 부여합니다. 보도사진이 사진 찍기로 글쓰기를 대신하는 것이라면, 예술사진은 말이나 글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담으려 합니다.
사진은 세상의 일부분을 네모난 프레임으로 잘라내는 것만으로 촬영자의 생각을 담을 수 있지만, 촬영자가 의도하지 않은 말을 제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진은 그림과 달리, 촬영자가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의 것도 언제나 함께 담기기 때문입니다. 보도사진처럼 제한된 범위로만 읽히도록 해야 이러한 어려움은, 다음의 사진 찍기 방법으로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첫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충분히 살핍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바로 카메라에 담지 말고, 최종적인 사진을 예측하여 타인이 어떻게 이해할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둘째, 무엇을 찍든 서로 다른 여러 장면을 촬영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다른 각도와 위치, 좀 더 넓거나 좁게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차례로 넘겨보면서, 가장 적당한 사진을 선택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셋째, 최종적인 한 장의 사진을 선택했다면, 포토샵과 같은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조금씩 사진의 일부를 잘라봅니다. 꼭 필요한 것만을 남겨두고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는 것입니다.
사진으로 내 생각을 전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촬영자가 직접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담긴 사물의 이미지가 촬영자의 생각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에 내 생각을 잘 담으려면, 사진 속에 담기는 사물의 시각 이미지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알아야 하고, 여러 사물의 이미지들이 한 화면에 결합될 때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각 이미지와 관련된 문법을 배우고, 반복적인 사진 찍기를 통해 익혀야 합니다.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모국어처럼, 시간이 지나면 익혀지는 것이 사진 찍기가 아닙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사진을 정규 과목으로 개설해 가르칠 필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각 이미지로 정보의 많은 부분을 유통하는 시대에, 사진을 읽고 쓰는 능력의 부족은 타인과 소통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사진교육은 영화나 TV 등 시각 이미지에 대한 감상 능력을 기르고, 광고와 같은 상업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힘을 길러주는 기초학문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