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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민수 Sep 23. 2020

걷기와 사진 찍기

버스를 타고 가다가 멋진 풍경을 보면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사진 찍기도 좋습니다. 때로 사진 찍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버스에서 내려 풍경 속을 걷고 싶다는 충동도 일어납니다. 세상을 그림처럼 바라볼 때는 얻을 수 없는, 공간을 직접 걸으며 느끼는 행복감을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 것이 아닌, 걸으며 사진을 찍을 때는 언제든 발걸음을 멈출 수 있고, 대상을 차분히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교통수단에 몸을 맡길 때는 정해진 노선을 따라 보이는 것만을 보지만, 걸을 때는 방향을 쉽게 바꿀 수 있어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다른 것들이 펼쳐지고, 카메라를 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색다른 프레임도 만들 수 있습니다. 



걷기를 통한 사진 찍기의 효과를 높이려면 다음과 같이 하면 좋습니다. 첫째, 사진 찍을 대상을 정해놓지 않습니다. 촬영의 대상을 미리 정하면, 그것 이외의 것들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목적 없이 무방비 상태로 걸을 때, 예상치 못한 것을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둘째, 천천히 걷습니다. 거북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걸어봐도 좋습니다. 사진 찍기는 세상의 일부분을 네모난 프레임으로 잘라내는 것인데, 느리게 천천히 걷을 때 세상의 모습이 잘게 쪼개지고, 잘게 쪼개진 것들을 사진 속에 새롭게 결합해 담을 수 있습니다. 같은 시각 재료로 남들과 다른 사진을 찍는 비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혼자 걷습니다. 사물의 말은 감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말을 들으려면 촬영자는 특별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혼자 걸을 때, 내 몸은 더욱 민감해져 사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되며, 그동안 듣지 못했던 사물의 말을 듣고 그것을 가시화시킬 수 있습니다. 


넷째, 동선을 정하지 않습니다.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최단거리로, 가장 편안 길을 찾아 걷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늘 가던 길만 가고, 익숙히 보던 것만 봅니다. 사진 찍기가 때로 습관적인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사진을 찍으며 길을 잃을 때가 그 순간입니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과 만나고, 그것들이 내 안에 침투할 수 있도록 넋을 잃고 걷는 것입니다.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봅니다. 이렇게 하면 놀랍게도 차를 타고 멀리 떠나지 않아도, 익숙한 일상 속에서 진기하고 멋진 장면을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카메라를 드는 것만으로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걷기라는 시간 속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고 붙잡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는 것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시간에 내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목적 없이 천천히, 혼자 동선도 없이, 길 잃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진 찍기는 이전과 다른 내가 되는 시간 보내기입니다. 이런 시간을 겪으며 찍힌 사진은 새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촬영자가 무엇을 맞닥뜨렸으며, 맞닥뜨린 사물과 어떻게 보냈는지를 사진은 자신의 몸에 흔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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