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가를 걷다 보면, 사진관 옆 길가에 얼굴 사진들을 모아 만든 입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사진들로 만든 입간판에는 서로 다른 사람인데도 어딘지 서로 닮아있습니다. 대체로 눈이 크고 턱은 V자 형태며, 눈썹은 일자로 진하고 긴 계란형 얼굴들입니다. 누구를 찍던 미리 정해놓은 이상적인 모델을 세워놓고 비슷한 방식으로 수정을 한 결과입니다. 사진관에서 찍은 내 얼굴 사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화장을 진하게 한 것처럼 주름과 잡티가 모두 사라진, 평소 익숙한 내 모습과 많이 달라 보입니다. 내 얼굴이라는 바탕 위에 투명한 가면을 씌운 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증명용 사진으로 그것을 선뜻 사용합니다.
얼굴 사진에 씌워지는 이러한 포장은 찍은 사진을 수정하는 과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 찍히는 순간,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망설입니다. 어색하더라도 웃을까, 점잖게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사진에 찍힐 때 포즈 취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수많은 내 모습 중에서 어떤 나의 시각 이미지를 사람들 앞에 내놓을까를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진관을 찾는 것입니다. 사진관의 사진사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표준적인 방식으로 내 얼굴 사진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휴대폰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찍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로 누구나 자유롭게 사진을 찍듯이, 셀카 사진 찍기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포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셀카 사진을 찍기 위한 별도의 도구가 상품화되기도 했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휴대폰 액정화면에 비친 모습을 보며 마음껏 셔터를 누르는 사이, 그동안 있었지만 가려져 보이지 않던 여러 나의 모습들이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셀카 사진 찍기 또한 여러 모습 중에서 이상적인 모습만을 찾아 선별적으로 셔터를 누를 가능성이 여전히 있습니다. 카메라는 내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지만, 촬영자의 시선에 따라서 원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마술 거울의 역할도 하기 때문입니다.
인물사진 찍기는 특정한 시각 이미지로 내 모습을 붙잡고 고정시키는 행위입니다. 주민등록 사진, 여권 사진, 이력서 사진 등은, 시각 이미지일 뿐인 사진이 실제의 내 모습을 증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찍힌 얼굴 사진이 공식적으로 나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사진 사용에 익숙해지다 보면, 눈을 감고 떠올리는 내 모습은 자주 쓰던 증명용 사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떻게 사진을 찍을 것인가도 쉽지 않지만, 어떻게 사진 찍힐 것인가도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진에 ‘잘’ 찍히기 위해서는 먼저 습관적인 포즈 취하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노트에 펜으로 써가며 서명하기를 연습하듯이, 사진 찍히기라는 연극무대에 설 때를 대비해 미리 연습할 필요도 있습니다. 상투적인 포즈에서 벗어난 사진 찍기의 연습은 어렵지 않습니다. 언제든 휴대폰 카메라를 손거울처럼 꺼내, 이미 만들어진 자화상(혹은 영정사진)을 바라보듯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내 얼굴 사진이라는 자화상을 보게 될 감상자와 어떤 모습으로 만날 것인지, 그들과 어떤 교감을 나눌 것인지를 떠올려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