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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민수 Sep 23. 2020

사진 찍기로 세상을 펼치는 방법

어릴 때 살던 집의 마당을 성인이 된 후 파헤칩니다. 땅을 팔수록 어릴 때 사용하던 물건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순간, 어딘가에 갇혀 있던 과거의 기억들도 함께 떠오릅니다. 앨범 속에서 오래된 사진을 볼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오래된 물건과 옛 사진이 기억을 끄집어내듯이, 사진 찍기도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을 발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의 공간은 아직 현상이 되지 않은 거대한 필름입니다. 일상이라는 필름에 남겨진 여러 흔적들은 당장은 볼 수 없지만, 사진 찍기를 통해 언제든 현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다가 익숙한 일상이 낯설어 보이고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일상이라는 필름이 새롭게 현상되고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삶의 공간을 사진 찍기로 새롭게 발굴하고 펼치는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기존에 익숙한 윤곽을 뭉개고, 경계를 갈라놓는 방식의 사진 찍기입니다. 카메라로 일상의 모습을 잘게 쪼갠 후, 네모난 프레임 속에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한 걸음을 옆으로 혹은 앞뒤로 옮기면, 일상이라는 퍼즐을 흩었다가 새로 짜 맞출 수 있습니다. 눈으로 가상의 네모를 그린 후, 그렇게 그려진 가상의 네모를 허공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또한, 사진이라는 시각 이미지 속에서 일 뿐이지만 일상의 모습을 재배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진 찍기의 대상으로 삼는 일상은 이미 인간이라는 필터로 걸러지고, 뇌라는 스크린에 비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앎과 기억이라는 제한된 통로로, 제한된 영역의 빛의 파장 속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분명 눈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 보지 못한 것, 볼 수 없는 것들을 가시화시키고 발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사진 찍기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퍼즐을 새로 맞추는 정도의 사진 찍기가 아니라, 흔들면 전체 구조가 달라지는 만화경을 사용하듯이 카메라를 활용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방법은 무엇을 찍었는지 알아보지 못하게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찍힌 사진의 의미가 분명하면 할수록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각으로 이루어진 사물의 말을 인간의 말로 억지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앎과 기억에 붙잡혀 있는 우리의 눈은, 새롭게 마음을 먹는다 해서 세상을 갑자기 달리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을 버림으로써, 사진에 의미를 담으려는 의도를 버림으로써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촬영자가 말하기를 포기하고, 사물이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의 사진 찍기입니다. 


세상은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접혀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펼쳐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카메라와 촬영자가 새롭게 결합해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눈을 새롭게 함으로써 사진 찍기를 달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진 찍기의 방법과 태도를 바꿔서 새로운 종류의 관찰자인 ‘카메라-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습관적인 눈 대신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카메라-인간이 될 때야 비로소 일상이라는 필름은 새롭게 현상되고 발굴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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