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 #크로스핏은처음입니다만
“그거로 바꾸니까 더블언더 잘 돼?”
”응, 훨씬 나아. 역시 장비 빨이라니까.”
그 사람이 쓰고 있던 건 크로스핏 센터에 있는 줄넘기가 아니었다. 개인 사물함에서 꺼낸 개인 줄넘기였다. 실력은 지금 갖출 수 없지만, 장비라면 나도 갖출 수 있는데! 정수기로 물을 뜨러 가면서 슬쩍 그 사람이 쓰는 줄넘기를 넘겨다보았다. 무척 줄이 얇고 가늘었다.
퇴근길에 ‘크로스핏 줄넘기’라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찾았다! 그 사람이 쓰던 것은 바로 ‘와이어 줄넘기’였다. 여러 개의 줄넘기 중에서 어느 것이 나를 가장 새우처럼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고심했다. 결국 가장 상품평이 많은 것을 주문했다.
며칠 뒤 와이어 줄넘기를 배송받았다. 와이어에 얇은 고무를 씌워 놓은 줄넘기로, 고무로만 된 일반 줄넘기보다 더 가벼웠다. 대신 몸에 맞추어 줄을 펜치로 잘라 길이를 조정해야 했다. 길이를 맞추고 집 앞에 나가서 줄넘기를 해보았다. 크로스핏 센터에 있던 줄넘기로는 한 번도 쌩쌩이를 하지 못했다. 어릴 때는 여덟 개까지는 했었는데, 역시 나이 때문인가? 장비를 샀으니까 다를까? 다르겠지? 달라야 할 텐데?
세상에.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일반 줄넘기에 비해 상당히 가벼워서 그런가. 한 번만 넘는데도 손과 발 동작이 잘 맞춰지지 않아서 계속 발에 걸렸다. 그러다 다리를 맞으면 무척 아팠다. 고무가 씌워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와이어이기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줄넘기에 걸릴수록 (아파서?) 잘 뛰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스무 번 넘게 다시 시도해 보고서야 비로소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쌩쌩이 기술 시전!
© Justin Fisher, 출처 Unsplash
아빠나 크로스핏 센터의 다른 회원들처럼 새우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당연하겠지만 줄넘기만 가볍다고 바로 새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몸이 웬만큼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장비도 소용이 없다. 줄넘기를 사고 한 달이 넘어서야, 나는 최대 다섯 번까지 새우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나마 그 사이에 크로스핏을 일주일에 세 번씩 꼬박꼬박 다녔던 덕분이다.
줄넘기를 할 때마다 옛날 그때의 아빠 얼굴이 떠오른다. 조금씩 더 빨갛고, 더 노랗게 물들어가던 나무 이파리들. 딸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한껏 긴장되어 있던 아빠의 표정. 쌩쌩이가 잘 되지 않는다고 울적했던 나를 보며 자기 일처럼 속상해했던 아빠.
얼마 전 아이와 같이 줄넘기를 하러 집 앞에 나갔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줄넘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줄넘기하는 거 잘 봐.”
아이는 비장한 얼굴로 줄을 돌리고 발을 쿵쿵 구르며 힘겹게 줄을 넘었다. 새삼 일반 줄넘기도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과 발이 사이좋게 협업을 해야 줄넘기가 가능한 것이었다는 깨달음! 아이는 열 개를 넘더니 자랑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너도 언젠가는 일반 줄넘기가 익숙해지고, 쌩쌩이를 연습하는 날이 오겠지? 아빠의 다정하고도 애틋한 마음이 내 마음에도 자라난다.
☑️ Hang과 Clean
- Hang: 덤벨이나 바벨을 무릎과 골반 사이 높이에서 들고 있는 상태를 말해요.
- Clean: 바닥에 있는 덤벨이나 바벨을 어깨까지 들어올리는 동작이에요.
#나비_크로스핏 #크로스핏하는여자 #운동하는여자 #여성에세이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