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Jun 08. 2023

8. 시지프스의 공

[크로스핏 도전기] ‘XX! 죽겠네!’

#크로스핏 #크로스핏은 처음입니다만



공과 친한 사람들이 부럽다. 그런 사람들의 손과 발에는 마치 공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축구공은 투명한 끈으로 발목에 묶여 있는 느낌. 농구공은 손에 찍찍이 테이프로 붙여 놓은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공들은 나에게 오면 제멋대로 변한다. 멀리서 날아오는 축구공은 내 발에 붙기는커녕 옆으로 슝 지나간다. 심지어 가만히 세워 놓아도 발에 제대로 맞지 않는다. 농구공은 한두 번 바닥에 튕기면 다른 방향으로 튀겨져 나간다. 공을 손에 올려놓으면 던지기도 전에 스르르 미끄러진다. 



이렇게 나는 공과 친하지 않은데, 심지어 크로스핏에서도 공을 만날 줄은 정말 몰랐다. 코치가 와드가 적힌 칠판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둘이 하는 게 아니고 혼자 합니다. 1분 동안 각 동작을 하고 남는 시간은 쉬는 거에요. 버피 15개, 월볼샷 15개, 푸시업 15개를 순서대로 하고요. 그리고 그 다음 1분은 휴식 하시면 됩니다. 공 하나 씩 가지고 오세요.” 


덤벨과 케틀벨이 빼곡히 놓인 철제 선반 위쪽에 까맣고 거대한 공이 우락부락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겉은 매끈하고 눌러보면 살짝 말랑말랑한데, 크기가 수박의 1.5배 만큼 컸다. 공에 적힌 숫자가 가장 작은 것, 즉 가장 가벼운 공으로 골랐다. 



“공의 아래쪽을 두 손으로 받치고 일어나면서 위쪽으로 던져서 타깃을 맞추는 거예요. 손을 앞으로 쭉 뻗을 때 공을 긁어낸다는 느낌으로 해보세요. 농구할 때 슛하는 것처럼요.” 



코치 님, 공을 어떻게 긁는다는 거죠. 긁는 건 효자손으로나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생각은 혼자 삼켰다. 나름 제일 가벼운 공인데 왜 이렇게 묵직한 건지. 공으로 맞춰야 하는 타깃은 철봉에 붙어 있었다. 다트판처럼 생긴 타깃은 아득하게 높아 보였다. 사람들이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스쿼트를 하고 일어나면서 슉, 던지면 일자로 뻗어나간 공이 탁,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타깃을 맞고 떨어졌다. 


©  Justin Fisher, 출처 Unsplash


“회원 님은 벽에 던지세요.” 


벽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쭉 이어져 있으니, 적당히 낮게 던져도 괜찮겠지! 나는 한두 개 던져보면서 속으로 기뻐했다. 너무 성급한 안도였다. 



와드가 시작되었다. 꾸역꾸역 버피 15개를 끝내고 나니 이미 50초가 지났다. 내가 공을 던지기로 한 벽 앞으로 가니 쉴 새도 없이 월볼샷 시작! 


“공을 받고 앉으셔야 돼요. 일어나면서 공을 던지고요.” 


코치가 옆에 와서 자세를 면밀하게 봐주는 바람에 대충 할 수가 없었다. 고마운데 마냥 좋지만은 않은 이 기분…… 끝없이 밀려 내려오는 돌을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지스프가 된 것 같았다. 공은 던지자마자 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 이것이 바로 F=mg, 중력의 힘이었지. 6파운드(2.7kg) 공과 중력가속도를 곱하면…… 팔이 뻐근하다 싶을 때쯤 열다섯 개가 끝났고 57초가 지났다. 


“3, 2, 1, 시작! 파이팅!” 


코치가 외쳤다.


꾸역꾸역 푸시업을 하고 나니 고작 5초가 남았다. 다음 1분은 쉴 차례라는 게 몹시 기뻤다. 푸시업을 하고 남은 5초에 1분을 더해, 다디단 1분 5초 동안 나는 매트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1분이 아주 게눈 감추듯이 사라졌다. 이렇게 네 번을 더해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은 더 무거운 무게로 타깃을 맞추는 데도 나보다 훨씬 빨리 15개를 끝냈다. 어쩔 수 없었다. 초보 시지프스는 계속 성실하게 돌을 밀어 올리는 수밖에. 


하지만 네 번째 세트 때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팔다리가 후들후들 거렸다. 열다섯 번째로 던졌던 공을 받아서 바닥으로 던지면서 속으로 크게 욕했다. 


‘XX! 죽겠네!’






☑️ 바닥에서 하는 동작들 


- Sit up: AB매트를 허리 밑에 깔고 양발을 모은 다음 윗몸을 일으키는 동작이에요.     

    * AB매트: Abdominal Mat. 허리 라인에 맞게 볼록 튀어나온 복근 운동용 매트에요. 


- Burpee: 버피테스트. 저는 푸시업 자세로 엎드렸다가 앞에서부터 몸을 순서대로 (웨이브 하듯이) 일으킨 다음 발을 상체 쪽으로 당겨오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 버피 뒤에 '오버더'가 붙으면, 버피를 하고 옆에 있는 바벨 봉이나 로잉 기계 등을 뛰어 넘고 그 옆쪽에서 다시 버피를 하라는 의미예요.  


- 그 외 런지, 스쿼트, 푸시업, 플랭크 등을 합니다!



#나비_크로스핏 #크로스핏하는여자 #운동하는여자 #여성에세이 #에세이 #에세이그램


이전 08화 7. 새우가 되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