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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n 09. 2023

9. 하염없이 꾸역꾸역

[크로스핏 도전기] ‘으악 이 사람 장난 아니네!’

#크로스핏 #크로스핏은처음입니다만



역시 이 공도 나와 친해지려면 멀었다. 축구나 농구처럼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작 자체가 어려웠다. 마지막 세트니까 힘내보자고 다시 다잡았는데, 마침 코치가 또 옆으로 왔다. 



“자자, 화이팅! 공을 끝까지 밀어주고요. 두 손으로 받고 스쿼트 하세요.”



코치님, 저도 머리로는 이해했으니까 안 봐주셔도 돼요,라는 말은 역시 속으로만 했다. 머리로만, 이해한 게 맞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내 몸의 자세는 신기하게도 묘하게 달라진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조금 더 쉽고 편한 쪽으로 움직이는 순리란! 아마 코치는 내가 점점 공을 더 낮게 던지고, 다리를 점점 덜 굽히는 걸 보고 다가온 것이 분명했다. 



허벅지가 오징어처럼 흐물흐물 해졌을 때 즈음 다섯 번째 세트까지 모두 끝났다. 초보 시지프스는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을 훔치며, 새까만 공을 품에 안고 철제 선반으로 걸어갔다. 



©  Ambitious Studio* - Rick Barrett, 출처 Unsplash


얼마 전, 공과 집중적으로 친해져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V-Up와 월볼샷만 반복하는 와드였다. 먼저 파트너와 1분 동안 동시에 V-Up을 12개 한다. V-Up은 누운 자세에서 윗몸과 다리를 동시에 위로 들어 손으로 발을 터치하는 동작을 말한다. 나는 아직 코어 힘이 부족해서 발 대신 무릎을 터치한다. 그다음 1분 동안 번갈아 월볼샷을 한다. 둘이 합해서 월볼샷 총 300개를 채워야 한다. 그래서 월볼샷을 1분 동안 몇 개 하느냐에 따라, V-Up을 몇 번 할지가 달라지는 거다. 



처음 공과 만났을 때는 15개씩 다섯 세트, 그러니까 75개만(?) 던지면 끝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15개씩 열 세트를 던져야 했다. 두 배로 늘어나다니? 나에게 6파운드 보다 더 가벼운 공을 달라! 파트너는 마치 몸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처럼 몸을 번쩍번쩍 일으키며 V-Up을 했다. 나는 ‘으악 이 사람 장난 아니네!’라고 속으로 외치며 몸을 접어보겠다고 연신 바둥거렸다. 내가 던질 차례가 되었다. 나는 가장 가벼운 공을 잡고 꾸역꾸역 던지기 시작했다. 



공을 던지는 벽 위쪽에 시지프스가 나타나 나를 내려다보며 웃는 것 같았다. 갑자기 시지프스가 무척 얄미웠다. 그는 무게가 똑같은 돌을 계속 밀어 올렸을 것 아닌가. 물론 처음에는 한 번 밀어 올리는데 죽을힘을 다했겠지만, 백 번 정도 하면 팔에 근육이 붙어서 예전보다 더 수월해지지 않았을까?  나는 무게에 익숙해지면 조금씩 더 무거운 공으로 바꿔야 한다. 코치가 늘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가벼운 공으로만 계속할 수도 없다. 몸이 편해지면 전문가가 보기에 티가 나버리는 거다.


“3초, 2초, 1초, 이제 V-Up!”



하염없이 누워서 몸을 접고 하염없이 던지기를 반복했다. 점점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머리가 맑아지다니. 운동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장점(?)이 많다. 한 세트 더 반복하면 배와 허벅지에 불이 나겠구나, 싶을 때 와드가 끝났다. 나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벽 속 시지프스와 마음속 하이파이브를 외쳤다. 벌컥벌컥 들이켠 물이 몹시 꿀맛이었다.  






☑️ Strict Pull-up과 Kipping Pull-up의 차이?    


- Pull-up(턱걸이)을 반동 주어서 하느냐, 가만히 매달려서 하느냐의 차이에요. 


- Strict는 무반동이고, Kipping은 반동을 이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동을 줄 경우,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턱걸이를 하게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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