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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n 06. 2023

6. 휘휘휙, 휘휘휙, 휘휘휙

[크로스핏 도전기]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다고 생각해 봐."

#크로스핏 #크로스핏은처음입니다만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새 제법 선선해진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아빠와 나는 줄넘기를 하나씩 들고 집 앞 공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씩 노랗게 바래가는 나무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줄넘기 실기 평가를 두 주 앞둔 주말이었다. ‘쌩쌩이’를 스무 개 하면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시험이었다. 쌩쌩이는 두 발로 한 번 뛰었을 때 줄을 두 번 돌려 넘는 것을 말한다. 



당시 나는 스무 개는커녕 두 개도 제대로 넘지 못했다. 아빠는 나에게 먼저 쌩쌩이를 해보라고 말했다. 휘휘휙, 휘휙ㅡ 딱! 쌩쌩이를 한 번 하고 바로 줄이 신발에 걸렸다. 팔과 다리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데 줄이 걸리는 소리만 요란했다.


“뒤가 아니라 앞으로 발을 보내야 돼.”


아빠는 나에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휙휙휙 한 번씩 넘다가, 줄을 빨리 돌리기 시작했다. 휘휘휙, 휘휘휙, 휘휘휙 하며 연속으로 열 번을 넘었다. 나는 고무줄놀이하듯 발을 뒤로 보냈는데, 아빠는 몸을 접으면서 앞으로 발을 보내며 뛰었다. 새로운 포즈로 시도해 보았지만 아빠처럼 잘 되지 않았다.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다고 생각해 봐.”


그 말을 듣고 보니 쌩쌩이를 하는 아빠는 마치 펄떡거리는 한 마리 새우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새우깡 봉지 앞에 그려진 새우의 모습을 그렸다. 상상한다고 바로 나도 새우같이 쌩쌩이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주 동안 아빠와 맹렬하게 연습하다 보니 조금씩 발에 걸리지 않는 개수가 늘어났다. 나는 실기 평가 때 쌩쌩이 여덟 개를 해냈다. 그래도 힘들기만 하고 즐겁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시험이 끝나면 다시 쌩쌩이를 할 일은 없을 거라며 나는 속으로 기뻐했다.  



© Element5 Digital, 출처 Unsplash



그로부터 25년도 넘게 흐른 어느 날, 나는 크로스핏에서 줄넘기를 다시 만났다. 


“더블언더는 50개, 안되시는 분은 플레이트 점프로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철제 선반 옆에 걸린 줄넘기를 고르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자기 사물함에서 줄넘기를 꺼내왔다. 더블언더가 줄넘기 관련된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줄넘기 근처로 가는데 코치가 나를 불렀다.


“더블언더 혹시 안되시면 플레이트 15짜리 갖고 오세요.”


더블언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못하겠지? 0.1초의 망설임을 뒤로 하고 플레이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플레이트는 바벨(=역기)에 끼우는 원반 모양의 쇳덩이다. 15파운드짜리를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데 옆에서 휘휘휙,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리였다. 더블언더란 두 번(Double) 밑으로(Under) 돌린다는 것, 쌩쌩이였다.


“시작하겠습니다! 5, 4, 3, 2, 1! 파이팅!” 

“파이팅!”



코치의 선창에 다 같이 파이팅을 외치며 와드(그날의 운동 프로그램)를 시작했다. 물론 더블언더 50개만 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더블언더는 와드의 한 부분이다. 하얀 보드 위에 와드 내용이 쓰여있었다.



AMRAP 20min


Double Under 50  

TTB 15                  (*1)

Double Under 50

DB Thruster 15      (*2)


(*1) 토투바. <스크류바 말고>편 참고

(*2) 덤벨 쓰러스터. 덤벨을 들고 스쿼트를 했다가 팔을 쭉 펴고 덤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


AMRAP(암랩) 20min는 1세트를 20분 동안 최대한 많이 반복하라는 의미다. 암랩 아래 적힌 더블언더부터 덤벨 쓰러스터까지 4가지 운동의 개수를 채워야 1세트이다. 20분 동안 쉬지 않고 운동할 생각에 나는 벌써부터 아찔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모두 새우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대신 플레이트 점프! 플레이트를 바닥에 두고 그 위로 폴짝폴짝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두 발을 모아 뛰며 오십 번이 되기를 하염없이 헤아렸다. 우리는 모두 비지땀을 흘리며 각자의 자리에서 뛰었다.  


하지만 나는 새우가 되고 싶었다. 와드를 마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문득 나한테 들렸다.



 




☑️ 무게, 개수와 관련된 용어들   


- Rx’d: Rx는 의약품, d는 day의 약자에요. Rx'd는 처방전이라는 의미입니다. 와드에 적힌 대로(처방전 대로) 무게나 개수 수정 없이 그대로 진행하는 거에요. 


- Scale: 하지만 저는 Rx'd에 해당하는 무게는 들 수가 없죠. 저한테 적절한 무게·개수로 바꿔서 운동할 때 Scale에 맞춰서 한다고 표현해요.


- PR: Personal Record. 자신의 최고 기록을 말해요.




#나비_크로스핏 #크로스핏하는여자 #운동하는여자 #여성에세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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