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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l 13. 2023

서로의 짐이자 힘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 지기를

옥희살롱 기획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를 읽고

#새벽세시의몸들에게 #옥희살롱


작년 가을이었다. 부모님은 아이들 돌봄을 도와주러 우리 집에 와 있었다. 퇴근한 나를 보고 자기도 '육퇴'하려고 겉옷을 챙기던 엄마가 말했다.

“의자에서 일어날 때마다 여기, 고관절인가? 아파서 잘 못 일어나겠어.”

“많이 아파? 병원 가 봤어?”

나는 엄마가 고관절이 아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다.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두 가지 걱정이 동시에 솟았다. 엄마가 아프면 아이들 하원부터 회사 퇴근 전까지 돌봄을 어떻게 해야 하지? 혹시 못 걷게 되어서 내가 음식도 해드리고 주기적으로 찾아뵈어야 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겠지?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는 옥희살롱이 기획하고, 김영옥·메이·이지은·전희경 님이 함께 쓴 책이다. 옥희살롱은 나이/듦을 생애 전반에 거쳐 연구하고 문화를 변화시키려는 목표를 가진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다.* 이 책은 부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질병·돌봄·노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나 늙고 언젠가는 죽는 취약한 존재임을 기억하고 무조건 가족에게 향하지 않는 ‘시민적 돌봄’을 실천하자는 주장, 간병하는 ‘보호자’에게 지워지는 의무와 아픈 사람과의 관계, ‘젊음과 건강이 규범인 사회’에서 젊고 아픈 사람이 겪는 일상, 치매 이후 자기 몸을 상상해 보는 이야기들, 치매에 걸린 노년을 보호하는 방법을 노년의 자리에서 고민하자는 제안 등이 있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의 주제는 각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들어간 요소는 돌봄이다. 아이가 어리거나, 질병이 있거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은 어린 시절을 겪었고, 살면서 병에 한 번도 걸리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누구나 노인이 된다. 때문에 나에게는 각자도생이라는 표현보다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빚지고 있다", "우리 몸은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이다."(p.59)라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그런데 돌봄의 무게는 한쪽으로 쏠려 있다. 한국 사회는 돌봄 의무를 가족에게 1순위로 지운다. 역시 딸이 최고야, 라는 표현 아래에는 아들보다 딸이 부모 봉양을 살뜰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엄마의 고관절 이야기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은 두려움이었다. 아이 돌봄은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나아진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와 유치원생인 둘째는 몇 년 지나면 둘이 집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흰머리가 많아지는 만큼 아픈 곳도 늘어날 것이다. 내가 병원 진료에 동행하거나 간병을 위해 병실에서 함께 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날이 온다. 그 광경을 상상했을 때 나는 조금 막막해진다. 외동딸인 나는 병실에서 나와 교대할 수 있을 거로 기대되는 '가족'이 거의 없다. 간병이라는 일과 관련된 의료·법·가족의 문제들, '간병하는 사람의 '마음'이 처한 풍경과 그 풍경의 지도에 대해'(p.87)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서서히라도 만들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치매에 관한 마지막 두 편의 글에서는 마음이 복잡했다. 엄마 아빠의 부모님 중 돌아가신 분들은 모두 치매가 없었고, 구순이신 (외)할머니는 기억력이 무척 좋다. 지금 치매에 걸리실 가능성은 미미해 보인다. 그렇다고 부모님이나 내가 치매에 걸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에 '우리-사회'가 치매에 걸린 노년들을 위험에서 '보호'하고 싶다면, 그 보호의 내용과 양태는 어때야 하는지를 보다 노년들의 자리에서 분명하게 고민'(p.290)해야 한다는 것에는 적극 공감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경쟁'과 '효율'을 몹시 중시한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평소 습관을 잘 기르고 생활패턴을 무난하게 유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좋은 몸을 만드는 것, 돌봄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p.234)이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만약 쓸모를 다해야 돌봄 받을 권리가 주어지는 게 아니고, "아픈 사람들은 이미 아픔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p.62)는 사고방식이 자연스러워진다면 어떨까. 내가 느끼는 걱정, 두려움, 심란함이 희석될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아프고 늙고 의존하는 몸으로 사는 것'(p.23)에 대해 외면하는 대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용기가 날 것 같다. '감정이 있고 취약하며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고 보살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다정한 존재로 '시민''(p.68)이 자리매김하고, '정상가족'을 넘어 사회와 수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p.80)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문득 질병, 돌봄, 노년이라는 단어가 살짝이나마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옥희살롱 홈페이지 참고 okeesal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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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갈색 책상에 소품들과 책이 올려져 있는 사진이다. 사진 위쪽에는 갈색 상자가 있고, 그 위에 갈대와 목화 같은 마른 식물들이 걸쳐져 있다. 사진 오른쪽으로는 상아색 향초 네 개가 비스듬히 왼쪽으로 기울어져 일렬로 놓여 있다. 상자 아래에는 책등을 위로 하고 책이 반으로 펼쳐져 있다. 책 표지는 연한 회색이고, 책등과 책 앞표지 우측 상단에 세로로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와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쓰여 있다. 책 앞표지와 뒤표지에는 흰 찰흙으로 만든 듯한 사람 모형이 있고, 사람들은 서로 돌보는 형태로 둘씩 짝지어 있다. 책등의 책 제목 아래에는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기획, 메이 엮음ㅣ김영옥·메이·이지은·전희경 지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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