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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연하게 Dec 10. 2022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솔잎이 무성한 나무 위에는 반짝거리는 조명과 장식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빨간 양말과 선물, 루돌프, 별, 요정 등의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식들은 언제나 인기다. 매년 날이 좀 추워졌다 싶으면 금세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거리 위를 점령한다.


유별나게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롱패딩을 벌써 꺼내 입었다. 직접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첫 눈도 내렸으니 카페나 음식점에 캐럴이 들려오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종교와 상관없이 남녀노소 누구라 할 것 없이 즐기는 크리스마스. 붉고 푸른색이 눈에 들어올 때면 분위기를 함께 즐기다가도 가끔 산타 할아버지가 괜히 야속해진다.


이유는 별것 없다. 그가 내게 선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미디어를 접하는 속도가 빨라 산타의 존재를 빨리 눈치채지만, 어릴 적의 나는 조금 달랐다.

동심을 지켜주는 분위기였던 그 시절, 동네에서 꽤나 산다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면 늘 보이던 트리가 어린 마음에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한 번은 거리에 쓰러져있던 죽은 나무를 집에 들고 가서 집안에 장식하자 졸랐으나 어른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벌레가 안에 들어가 있을지 모르니 당연한 결과였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를 가득 메우던 과거의 12월,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지나치게 무채색이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매년 우리 집을 방문하지 않는 건, 내가 매일 울어대는 나쁜 아이라 그런 게 아니고 여기니 정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칙칙한 우리 집이 문제지!”


그 이유가 아니고선, 내가 울 때 같이 울던 동네 꼬마가 선물을 받았다 자랑하는 게 말이 되질 않지 않은가. 산타할아버지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라 믿은 나는 없는 굴뚝은 제쳐두고 어떻게든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를 썼다.

오래된 붉은 양말을 빨래집게로 벽에 장식했다. 책상 위에는 집에 있는 반짝이는 물건은 죄다 올려놓고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산타에게 줄 쿠키는 없지만, 어디선가 받은 약간 녹은 사탕들도 가장 예뻐 보이는 접시 위에 올려놓으니 허접하긴 해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할머니는 내가 꾸민 집을 보고 질색하셨지만 나는 등짝을 맞으면서도 떼를 썼다. 울고불고 고집을 쓰는 내게 할머니는 산타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말했으나 믿지 않았다. 치워도 다시 원상복구를 금세 해버리는 내 끈질김에 결국 백기를 든 것은 할머니였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정말 신이 났다. 어떤 선물을 가져다주실까?


분홍색의 자전거, 과자 선물 세트,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 빨간 구두, 반짝이는 머리핀……. 그리운 사람은 받을 수 없으니 대신 평소 친구들이 가지고 다니던 값비싼 것들을 떠올렸다. 가지고 싶은 건 끝도 없이 떠올려진다. 밤이 깊어 자정이 넘자, 나는 차근차근 설렜던 마음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은연중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착한 아이로 살려 노력해 봐도 빨간 옷을 입은 배불뚝이의 사내는 우리 집을 찾지 않을 것이다. 매년 마르지 않는 눈물 탓도 아니고 칙칙한 분위기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모르는 척,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그럼 정말 내가 울어서야? 아니면 말을 안 들어서?’라고 어리광을 부려보지만 내 주변에는 동심을 지켜줄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 같이 산타는 존재하지 않고, 선물 따위 해줄 형편이 안 된다는 말이 돌아온 탓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내가 말을 매번 잘못으로 가정의 분란을 만들어서, 떼를 많이 부려 그런 것이라고 이유를 지레짐작만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 노력으로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버거워 나는 올 리 없는 산타 할아버지를 매년, 손꼽아 기다렸다.     


착한 아이만 된다면 세상이 일 년에 한 번, 12월 25일만은 내게도 상냥한 날이 되길 바랐다. 어른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우리 집도 겨울날 따스한 훈기가 돌길 바랐다.

가족이 모두 모여 하하 호호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사실 그 어떤 선물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이 산타가 찾아오는 기적보다 어렵다는 걸 알고 있어 매년 베개는 거리의 환한 축복 아래 눈물 자국으로 뒤덮이곤 했다.           



    

나는 아직도 크리스마스 당일 예쁜 포장지가 씌워진 선물이 모든 어린아이의 머리맡에 놓여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가 어른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크리스마스라면 나는 일 년, 12개월 중 단 한 달 정도는 전 세계를 하루 만에 돌 힘을 가진 백발의 할아버지를 믿는 바보가 되기를 선택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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