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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연하게 Jan 11. 2023

살기 위해 당신을 증오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기에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순수하게 사랑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건 분명 당신일 것입니다. 



따뜻한 품 안에 움츠려 나는 당신의 심장 소리를 자장가 대신 들었을 테지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달 밤 아래 맨 발로 갈대밭을 파헤치고 앉아 가련하게 떨어대던 당신의 심장 소리는 무척이나 크고 강하게 제 몸을 울렸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슬픔과 분노, 얕은 희망을 먹으며 열 달을 꼬박 커, 세상을 향해 태어났습니다.

     

건강하지만 까맣고 쭈글거리는 못생긴 아이. 당신은 막 출산한 저를 보며, 제게 걸었던 희망과 기도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그런 탓이 아닐까 고민했다고 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애교 많은 딸을 낳아주면 건실하게 살아보겠다는 말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아이입니다.

당신은 아버지의 말에 얕은 희망을 걸고 저를 손꼽아 기다렸을 테지요.

저는 분명 당신의 불안한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 희망을 느꼈을 겁니다. 똑똑하지 않고 예쁘지 않아도, 애교만 많은 딸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당신의 그 목소리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저는 아직 까지도 당신에게 희망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은 아직 한글도 떼지 못한 어린 아이가 봐도 참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제 추억 속에 남아있는 당신의 모습은 항상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늘진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밥을 먹이고 밥풀이 달라붙은 그릇을 설거지 할 때도, 몸이 아파 누워 겨우 숨만 들이쉴 때도 언제나 당신의 표정에는 금방이라도 떠나고 싶은 간절함이 묻어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당신의 뒤를 참 열심히 쫓아 다녔었지요.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 밖에서 당신이 나올 때 까지 발을 동동거리며 열심히 기다렸었습니다. 일을 하러 나가면, 홀로 집안에 남지 않고 당신이 계단을 모두 내려간 걸 확인하고 한 참이나 뒤에서 골목이 끝나는 길까지 몰래 따라가곤 했었습니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서는, 가끔 만나러 오는 당신을 기다리며 매일 시계를 봤어요. 당신이 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정해진 약속 날짜가 다가오면 저는 매번 마음을 졸였었습니다. 당신이 건강이 나빠져 저를 만나러 올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까 봐요. 그런 일이 생기면, 저는 당신이 또 응급실의 딱딱하고 좁은 침대에 누워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리곤 그럼에도 저를 만나러 오지 못하는 당신에게 서운한 마음을 쌓아두곤 했지요.     


당신은 아실까요?


오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할 당신이 혹시라도 비 오는 날 자식이 비를 맞을까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학부모 사이에 끼어있을까 한 참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전교생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우둑하니 정문에 서서 오지 않을 당신을 기다렸었습니다.

참 날이 추웠었습니다. 교내에 왜 배치되어 있는지 모르는 청동색의 조각상과 함께 비를 맞았었습니다. 그날 피어있던 수국은 몹시 아름다웠었습니다. 비를 맞아 무척이나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색을 뽐내고 있었지요.     




저는 몹시 외로웠습니다. 참 아프고 힘들었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도 아버지가 만들어낸 폭력에서 겨우 도망친 가련한 피해자였으니까요.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     


명확하게 선이 그어져 보이는 두 단어. 그 사이에서 저는 당신을 무엇이라 정의해야할지 날이 갈수록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제 인생은 당신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사랑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기에, 저는 눈 오는 날보다 비 오는 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나무가 떠오르는 따뜻한 갈색이 좋아한다기에, 저는 우직한 나무를 그려낼 수 있도록 초록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맹목적으로 당신을 사랑한 것은, 당신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웠던 탓이었을까요? 그게 진실일까요?     


할머니가 아이 둘을 키우기에는 힘들다고 말했을 때, 눈앞에서 당신은 저를 고아원에 맡기라고 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니면 저를 낳지 않았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친족 성폭행을 당한 저를 그 집에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후에는 저를 아동보호소로 보냈었지요. 물로 압니다. 당신도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궁지에 몰렸겠지요.

하지만 가족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몇 년의 시간을 지옥에서 인내했던 제게는 아직도 무척이나 힘들었던 일입니다.     




전화로 통화를 할 때 마다 저의 악다구니에 결국 져버렸던 당신은 물론 단 기간 내에 저를 당신의 지붕 아래로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그 지붕마저 그리 물이 새고, 위험할지는 몰랐습니다.

밤이면 새아버지와 어머니가 잠자리를 나누시는 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눈을 꼭 감고 모른 체 했었습니다. 어머니가 새아버지에게 맞는 것을 들으며 멀뚱히 먼 곳을 바라봤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제게 자식으로서 어찌 그럴 수 있냐고 화를 내셨었습니다.     


그때야 저는 알았습니다. 폭력에 노출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제겐 폭력이 일상이었습니다. 깨져있는 유리가 무척이나 날카롭게 방안과 밖으로 튀어있다는 사실 외에는 무감각했던 제 감정이 온 몸의 세포를 깨우듯 요동쳤습니다.

저는 날이 가도 바뀌지 않고 항상 가련하기만 한 당신을, 그때 보호해야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당신이 항상 아프다면, 항상 불행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내가 당신을 지켜주어야 하는구나.

13살짜리의 아이는 그때에, 당신의 보호자가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어차피 내겐 익숙한 일이니 당신이 그토록 몸서리치게 나를 혐오하는 눈빛으로 본다면 나는 그리해야겠구나, 하고 체념한 것 일수도 있습니다.     


그 이후부터 당신의 옆에 있는 남자는 몇 번 바뀌었습니다.

그 중에는 제게 칼을 들이밀었던 남자도 있었고, 저의 나체를 찍어 내던 남자도 있습니다.

저는 종국이 되기 전까지 그들의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빨래 대에 열심히 널었습니다. 제 것과 함께 널려 있는 세탁물은 저를 뼛속 깊이 비참하게 만들었었습니다.     


당신은 저를 참 많이 사랑한다고 했었지만, 모를 겁니다.

경제활동을 하기 전까지 당신은 참 저를 많이 구박했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면 당신의 짐을 줄여 들이기 위해 집안일을 하고 낯선 사내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한 순간일 뿐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술을 먹고 들어와 고함을 치고, 파출소에 있거나 가게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되면 제게 인생이 너무 힘들다고 소리를 치며 밀치셨었습니다. 당신은 제가 가식적이라 말했습니다.

항상 이해해주는 척 하며, 위선을 떨어대지만 항상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다고요. 맞습니다. 저는 모든 게 사실 불만이었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것은 당신의 곁에 있던 사내들이 아니라 당신이었을 뿐이니까요.

저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을 위로할 수 없다는 사실과 거부당한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처절한 배신감을 맛보았지요.    

 

열쇠 수리공을 불러 몇 번이나 집 걸쇠를 바꾸고 들어와 앉아있던 사내가, 칼을 제게 들이밀었을 때 당신은 사랑이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를 용서했었습니다.

제 나체를 몰래 찍어, 경찰서로 연행된 그를 용서 한다 글을 써달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제 인생에서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사내 하나를, 당신은 아직도 가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있잖아요, 어머니. 몇 번인가 소리 내어 겨우 말했었지만 저는 당신이 참 힘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제 모든 것을 깎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들이마시는 숨은 제 산소를 빼앗아 이루어지는 것인가요. 당신이 웃는 미소는 제 불행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인가요. 당신은 왜 그 삶을 항상 가련하게 만들어, 저를 죽음으로 걸어가게 만들어가게 만드는 것인가요.     



오늘, 타지의 추운 겨울밤에도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저는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돈을 벌었습니다. 대학교 진학에는 꿈도 꾸지 않고 말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아둔하여, 머리가 좋지는 못하였던 아이라 그것에 대해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대학 진학에 뜻을 두지 않았던 것은 결단코 말하 건데, 당신이 아프거나 힘들 때 제 힘을 보태고자 하였음입니다.     


당신의 그 힘든 짐이 덜어지면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건실한 삶을 살아내길 바랐었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집을 사고, 몇 년이나 꼬박 일하며 경제 사정이 나아져도 당신의 삶은 왜 아직도 가련한가요. 왜 저는 아직도 당신을 이리도 힘들게 바라보게 되는 것일까요.     


사실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이 말입니다.     


어제 밤에는 당신의 꿈을 꾸었습니다. 당신은 제가 두려워 사내들을 모두 불러놓고 밥을 해 먹였습니다.

김이 풀풀 나는 찌개가 중간에 놓인 붉은 식탁에는 제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멀리에 꼼작도 못하고 누워 울부짖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고 겨우 숨과 함께 비명을 토해내는 저를 향해, 당신은 악몽 속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아아, 어머니. 저는 당신의 전화가 두렵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울리는 진동과 액정 속의 번호가 말입니다. 제가 겨우 두 시간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친구에게까지 전화를 하는 그 집요함이 말입니다.     


저는 당신을 증오 하고 싶습니다. 사실 원망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모든 슬픔과 불행이 당신의 탓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숨을 내쉬려면 당신에 대한 사랑을 거둬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왜 이토록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일은 어려운 것일까요.

왜 당신의 말대로 사랑은 그리 간단하지 않고 이토록 어려운 걸까요.     


저는 저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말 한마디가 아직도 그리 달콤합니다. 그 말에 매달리고 싶어집니다.     


매일같이 갈증이 나서 사랑을 기다리고, 당신을 웃게 할 이야기와 단어가 있을지 고민합니다. 당신이 이 음식을 먹어봤으면 좋겠고, 여행길의 풍경과 바람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어머니, 저는 당신이 제 목을 조여 오는 익숙하지만 낯선 사람들과 같이 참 많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보다 훨씬 많이 사랑했고, 인생을 바쳐 사랑하기에 감히 당신을 증오하지 못하는가 봅니다.     


당신을 마냥 사랑하기에는 버겁고, 증오하기에는 턱 없이 나약한 제 의지를 저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저의 가련하고 나약한, 어머니.

당신은 제게 어머니란 단어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보호자가 아니라 13살 무렵부터 오직 저의 아이로 살아왔습니다.

작고 여린, 가련하고 마냥 불행한 당신에게 저는 오늘도 이를 악물고 눈물을 토해내며 용서의 마음을 다잡습니다.     


어쩌면 저는 오늘도 새롭게 죽어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내일도 이틀도, 먼 훗날도 매일같이 사랑하고 증오하기를 반복하며 제 마음을 죽일 것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사랑이 어렵다는 말을 제게 온전히 이해시켰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이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말을 제게 온전히 이해시켰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제게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슬픔을 온전히 이해시켰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당신은 제게 사랑도 이해시켰습니다.     


꽃이 예쁘다 말했던 어린 아이의 말에, 당신은 그제야 꽃이 아름답다는 걸 인지했다고 말했었지요.

아직 여린 손에 꽃을 쥐고, 당신을 향해 웃어 보이던 그 얼굴에 당신은 꽃의 색상이 그리 아름답고 세상이 밝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지요.


당신은 제게 세상이 밝고 아름답다는 것도 이해시켰습니다. 온전히 말입니다.     


당신이 저를 원망했고 버거워했고, 사랑스러워했듯이 저도 그러합니다.     



어머니,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닮은 얼굴로 당신을 증오하는 것을 아주 힘겹게 포기하고, 다시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아름다워 저는 눈물로 밤을 지새웁니다. 가슴을 붙잡고 어린 아이처럼 눈가를 붉게 물들이며 소리를 숨죽입니다.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항상 고통과 기대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특별할 것 없지만, 오직 나만이 나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알기에, 저는 제 자신을 홀로 위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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