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가에서 봉구가 된 우리 집 막둥이를 소개합니다.
"아가 호텔이에요!! 일주일 있다가 올게요~"
이 말은 아가 엄마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2014년 7월 25일 오후 5시 45분. 아가를 일주일 동안 호텔링을 맡기고 나가는 아가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기분이 싸했다. 뒤돌아 나가는 아가 엄마는 분명 울먹이고 있었다. 아니 호텔링을 맡기면서 왜 울먹이면서 나가지? 남자 친구랑 싸웠나? 아.. 헤어졌다고 했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가 엄마는 그 당시 남자 친구랑 만나면서 아가를 입양한 걸로 기억한다. 3개월령 때부터 놀이방과 호텔링으로 맡겨진 아가는 그야말로 카페에서 종횡무진 날아다녔다. 사람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사회성이 좋아서 모든 강아지들과 잘 어울리는 최고의 인기 강아지였다. 지금이야 서열 1위 코코가 손님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카페견이 됐지만 당시 코코는 강아지도 싫어하고 사람들도 무서워하는 사회성 제로의 강아지였다. 코코는 명색이 애견카페 강아지였지만 그 누구도 코코를 만질 수 없었다. 그런 코코와는 정반대 성향의 아가를 우리는 안 예뻐할 수가 없었다. 우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아가 혹시 버려지면 우리가 키우자는 농담을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정말 농담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아가 엄마의 마지막 울먹이는 표정이 일주일 내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고 불안했고 초조했다. 혹시나 해서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뭐 바쁜가 보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기다리던 중 아가가 돌아가기로 한 일주일이 됐다. 마감시간이 다 되도록 오질 않자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아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하시고 다시 걸어주세요~"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가사의 이승환의 노래는 분명히 삶의 통찰력이 녹아있는 노래임이 분명하다. 아니 불길한 예감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분명히 전에는 아가 일로 통화도 하고 문자도 했던 번호였는데 일주일 뒤 전화했을 때는 없는 번호라는 멘트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당혹해진 우리는 급한 대로 호텔 약정서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고 집주인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 정도면 아가를 작정하고 버린 게 분명했다. 우리는 일단 마음을 추스르고 회의에 들어갔다. 아무리 우리가 아가를 예뻐했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아가를 버리기 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을 떠올렸다. 연인들끼리 같이 강아지를 입양하고 키우다가 헤어지면서 버리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던 터라 우리는 아가 엄마가 아가를 버린 이유에 대해 충분히 합리적 의심이 추정 가능했다. 이유에 대해 알았다 하더라도 아가를 버린 것에 대해서 우리는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당시 아가는 6개월령 정도의 강아지였기에 키울 상황이 안됐으면 충분히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낼 수 있는 나이였다. 그 조차도 귀찮았던 걸까? 우리에게 버려진 아가는 생년월일도 제대로 모르고 접종도 끝까지 마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근처 동물병원을 샅샅이 뒤져서 한 동물병원에서 아가의 접종기록을 겨우 찾았다. 4차 접종까지만 마쳤던 아가. 집주소와 전화번호도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동일했다. 더 이상 아가 엄마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구청에 찾아가 봐도 경찰서에 가보라 하고 경찰서에 찾아가서 아가를 유기한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민사로 해결하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솔직히 SNS 등을 통해서라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가 엄마를 찾아서 아가를 보낸다 하더라도 계속 키울 수 있었을까? 분명히 이번에는 영영 찾아오지 못하는 험난한 곳에 버렸을 것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중 문득 아가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를 지켜보는 아가는 불안해하며 떨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마감 청소 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기만 해도 자지러질 듯 울어댔다. 애교도 많고 카페 바닥을 쓸고 뛰어다닐 정도로 활달한 강아지였던 아가. 자신이 버려진 것을 안 것일까? 우리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고 아가 엄마의 행방을 찾는 일도 멈추기로 했다. 이로서 아가는 우리의 여섯 번째 막둥이가 된 것이다.
호텔 위탁견인 아키와 나란히 포즈를 취하는 봉구. 아키 역시 보호소에서 데려온 유기견이었다.
아가는 갈색 푸들이고 당시 5개월에서 6개월령쯤 됐으며 베넷 미용도 중성화 수술도 되어있지 않는 아이였다. 우리는 일단 아가의 접종기록이 남아있는 동물병원에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동물등록을 우리에게로 옮겼다. 그때부터 우리가 아가의 정식 보호자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용과 중성화 수술이 시급했던 아가는 일주일 간격으로 미용과 중성화 수술이 진행됐으며 접종도 완료됐다. 그리고 호텔 위탁견이었던 시절에는 카페에서 잠을 잤지만 우리가 보호자가 된 후 아가 역시 우리랑 함께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가의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아가라고 부르면 자꾸만 아가를 버린 견주가 생각나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보신탕을 먹는 이들도 그래 아이들과의 교감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애견카페를 하면서 호텔비를 못 받은 금액만 7백만 원이 넘는다. 그래 그것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버리는 행위를 누구보다 극도로 혐오하는 우리는 아가의 새로운 견생을 위해서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강아지 이름을 짓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 은 달봉이의 봉자 삼식이의 식자를 따서 봉식이라고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봉식아!! 부르면 삼식이가 자꾸 쳐다보는 게 아닌가? 봉식이라는 이름은 삼식이를 혼란스럽게 해서 포기하고 우리는 아가의 이름을 부르기 쉽게 봉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루 종일 엄마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봉구.
우리가 왜 강아지 버리는 인간들을 혐오하냐면 버려진 아이들의 표정이나 눈빛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버리는 인간들이 처음부터 키우다가 싫증 나면 버려야지 하면서 키우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혼자 살면서 외로워서 그리고 연인한테 선물 받아서 또는 강아지를 단순히 좋아하니까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 그러다가 강아지를 키우는 일이 생각보다 번거롭기도 하고 경제적인 부담도 어느 순간 무겁게 다가오게 된다. 게다가 강아지는 유독 손이 많이 가는 반려동물이다. 산책도 시켜야 하고 주기적으로 목욕도 시켜야 하고 똥오줌도 수시로 치워줘야 하고 털 빠짐이 심한 아이들 같은 경우는 집안 청소도 만만치 않다. 어린 강아지들 같은 경우는 이갈이 때문에 전선이나 벽지 또는 장판을 뜯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혼자 사는 보호자가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난장판이 된 집안을 보고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이런 힘든 시기를 겪고 나이가 들면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분리불안 장애를 가지고 보호자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강아지를 키우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이들에게 아이는 그저 짐덩어리에 불가할 뿐이었다. 이 즈음 많이 포기들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을 파양 하거나 버리기로 마음먹은 순간 보호자의 마음은 남극의 얼음보다 차갑고 매정했다. 설득도 회유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버려진 아이들의 표정은 보호자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지내는 아이들과 확연히 달랐다. 우선 제일 먼저 불안해한다. 보호자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직감하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보호자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라도 어떻게든 의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은 문득 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보호자를 기다린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체념하고 만다. 그 체념한 아이들의 표정이 얼마나 마음을 후벼 파는지 대부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봉구가 우리의 막내로 산 세월이 7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분리불안이 심하다. 엄마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어떻게든 온기를 느끼는 스킨십을 해야 안심을 한다.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무릎에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못 올라오게 하면 옆에 꼭 붙어서라도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일하느라 바빠서 안아주지 못할 때 봉구는 삼식이의 풍성한 꼬리를 쿠션 삼아 안식을 취한다. 바쁜 엄마들 대신 봉구를 품어주는 삼식이가 이럴 때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달봉이가 아프고 삼식이도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예민한 솜이 케어하느라고 정작 사랑이 많이 필요했던 봉구에게 손이 덜 간 것 같아 항상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애견카페를 운영하면서 브런치를 시작함과 동시에 유튜브를 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달봉이의 십자인대 수술 후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비만세포종이 또다시 재발했으며 얼마 전 40년 지기 소꿉친구로부터 기획부동산 사기를 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달봉이의 암 재발과 믿었던 친구로부터 당한 사기로 인해 지난 몇 주간 우리 자매는 멘털이 무너져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이 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동안 이리저리 알아보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지금에서야 브런치에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 일들이 해결되서가 아니다. 달봉이의 투병은 계속 진행 중이고 친구에게 사기당한 일은 일단 묻기로 했다. 아는 법무사와 형사로 근무하는 동창한테 연락해 물어봤지만 사기죄로 입증하고 돈을 돌려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우리에게 사기 친 친구는 잠수를 탔고 친구가 몸담고 함께 사기 친 회사는 폐업했다. 8년 넘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번 돈을 비록 크지 않은 액수라도 사기를 치다니 너무 화가 나서 머리채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카페 운영도 해야 하고 동생은 스마트 스토어 사업을 계속 진행해야 했으며 시작한 유튜브 영상도 계속 만들어야 했다. 산산조각 난 멘털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한 자 한 자 적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암이 재발한 달봉이를 지켜야 하기에 친구로부터 당한 사기는 일단 가슴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오늘도 웃는 얼굴로 가게에 나가 우리 아이들과 위탁한 강아지들을 케어해야 하고 웃는 얼굴로 카페를 찾아오시는 손님들을 맞아야 한다. 첫 보호자에게 버려진 막둥이 우리 봉구와 아픈 달봉이를 비롯해 여섯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엄마들은 파이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