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널을 보고
얼마전에 오랜만에 영화 터미널을 보았다. 어릴 때 티비에서 해주던걸 부모님과 같이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던 거 같은데 확실히 나이가 먹고 다시 보니 어릴 때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단순히 갈 곳 없어진 한 불쌍한 아저씨가 공항에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살아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흥미롭고 재밌었는데 20중반이 되어서 다시 볼 때는 주인공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몇십년 후에 또 다시 본다면 그 때도 느끼는 바가 좀 달라져 있겠지..?
영화를 보면서 영화 안에는 크게 3개의 기다림이 있다고 느꼈다. 첫째는 주인공의 기다림, 두번째는 공항 이사의 국장이 되기 위한 기다림, 세번째는 스튜어디스의 기다림. 주인공은 내전 상태의 나라가 안정화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기까지의 기다림과 아버지의 못다이룬 꿈을 꾸기 위한 기다림을 갖고 공항에서 처절하다면 처절할 수 있고 유쾌하다면 유쾌한 삶을 이어나갔다.
두번째, 공항 이사의 국장이 되기 위한 기다림. 어릴 때는 국장이 그저 악역이며 골탕먹었을 때 쌤통이라고만 생각되었는데 다시 볼 때는 물론 정없는 캐릭터임은 분명하지만 나름 그에게도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공항 전체를 관리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매일 샌드위치로 밥을 떼우며 무결점한 행정을 위해 수많은 것을 신경쓰며 국장이 될 날만을 기다리는 것을 영화에서 잘 볼 수 있다. 직장에서 최고의 지위까지 올라가는 것은 정말 뼈를 깍는 고통과 노력 그리고 슬프지만 준수한 정치력도 있어야한다. 따라서 영화 안에서는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깐깐한 인물이지만 그의 삶에만 포커스를 맞춰본다면 그러한 쪼잔함과 깐깐함이 있었기에 그 자리까지 올라갔고 결국 국장이라는 최고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선민의식에 젖어있는 듯한 모습도 나오지만 일평생을 공항에서 사고치는 사람들 뒤치다꺼리를 하다보면 부정적인 편견이 생기는 것을 그저 욕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스튜어디스의 기다림. 어릴 때 봤을 때는 그저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여주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봤을 때 상당히 복잡한 인물임을 알고 충격이면서 신기했다. 가정이 있지만 자신과 바람을 피는 사람에게 빠져사는 사람을 향한 하염없는 기다림이라니..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이 여자는 기다림의 행위 자체에 중독되어버린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19살의 어린 나이때부터 전세계 하늘을 누비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삶을 살아온 그녀는 어디 한 곳에 종속되지 않은채 즐기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고 주변에서 삶의 구심점을 찾아 정착해가는 동료들을 보며 자신은 그런 삶이 별로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그 삶의 구심점이 기다림 자체가 되어버린게 아닐까.. 삐삐를 집어던지면서 인생을 옭메던 기다림에서 벗어나는 듯 보였으나 결국 마지막에 다시 그 기다림의 목줄을 스스로 다시 채우는 모습에서 중독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에 나온 인물들이 각각 자신만의 기다림을 갖고 살아가듯이 우리들 또한 삶에서 원하는 것 또는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 항상 노력하며 그 것이 우리 손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림을 반복한다. 영원히 죽을 때까지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다림의 끝을 보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다림의 과정은 고통스럽고 불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를 알기에 우리는 계속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30대가 된 나의 사족)
최근 나의 기다림도 무너졌다. 의사로서 안정적이며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다림. 그러나 오히려 정해진 길에서 한발짝 벗어나 돌아보며 새로운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모두들 간절히 기다리는 것들을 이룰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