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선행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사회에는 많은 흉흉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훈훈한 일들도 일어난다. 큰 재해가 있거나 사건이 있을 때 유명인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하는 기부, 평범한 사람들이 매달 정기적으로 불우이웃 돕기에 후원하는 것 등등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선행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이 선행 이라는 행위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선행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는 '착하고 어진 행실. 더 넓게 보면 사회에 이로운 일. ' 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행을 하게 되는 사람의 기본적인 심리는 무엇일까? 순수하게 남을 돕고 싶어서? 나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서? 아님 어느정도 사회적 위치에 이르러 사회적 의무감 때문에? 등등 선행의 동기는 개인마다 무궁무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행으로 인정을 받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오늘 길을 가다가 쓰레기가 떨어져 있어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고, 무거운 것을 들고 있는 할머니를 도와드렸고, 다리가 없는 채로 구걸하는 안타까운 노숙자분께 밥값정도를 쥐어 드렸다고 해보자. 나는 오늘 선행으로 가득찬 삶을 산 것일까? 내가 위의 행위를 했다는 것은 누구도 관심있게 보지 않았을 것이고 오로지 나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 나와서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는 대견하고 뿌듯해 할지 몰라도 과연 이것이 넓게 봐서 사회에 이로운 일로 이어나가질 수 있을까?
반대로 사업에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있다고 해보자.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세금 문제, 대외적 회사 이미지 문제,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따른 왠지 모를 의무감 등등 복합적인 이유로 그 해 큰 수해가 있던 지역에 매우 큰 금액을 기부했다. 이는 대외적으로 언론에서도 다룰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 사업가의 인성을 칭찬할 것이다. 사업가는 전자의 소소한 선행을 한 사람보다도 동기적으로는 불순하다고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봐도 이 사업가의 때묻은 선행이 오히려 선행의 사전적 정의에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얼마전에 쯔양이 꾸준히 아동보호소에 기부를 해오고 있었다는 기사를 봤다. 반응은 당연히 칭찬일색. 나 또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기부를 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오랜기간동안 쯔양은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언론에 노출되면서 그 선행의 가치가 더 인정받게 된 듯 보였다. 만약 언론에 나오지 않고 보호소 관계자 몇몇과 아이들만 쯔양의 선한 마음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어땠을까?
과연 선행이란 무엇일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혼자에게 뿌듯할만한 소소한 도움을 주는것? 아니면 남들이 알아차리고 인정해줄만큼의 영향을 끼칠만한 좋은 일을 하는 것? 자신의 능력이 되는 한도 안에서 모두가 소소한 선행을 행해간다면 사회가 좀 더 따스한 방향으로 나아갈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행 자체는 본질적으로 남을 돕고 싶은 마음에 앞서 남을 도움으로서 나의 가치를 좀 더 높일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행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완벽하게 순수하고 완벽한 선행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힘들어 보이는 세상이다.
30대가 된 나의 사족)
오타니는 쓰레기가 보이면 매일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쓰레기를 줍는 행위 자체가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의미 있게 보이지 않더라도 인해 쓰레기를 줍는 행위 자체로 자신이 운을 줍는 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살다보니 오타니의 마음가짐으로 살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다. 덕을 쌓는다고 하지 않는가. 미신적인 사고이긴 해도 선행 수치가 쌓이면 내 인생이 잘 풀리게 되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 인 것 같다. 선행을 베푸려면 항상 긍정적 사고로 밝은 생각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위해 하는 선행이라도 세상을 한층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모두들 조금씩 선행을 베풀어서 각박한 세상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카르마처럼 선행을 어느정도 쌓았으니 나쁜 행동을 해도 정당하다는 이상한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