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언어, 25개월
우주가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후 처음으로 간 여행의 목적지는 여수였다. 여수는 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 어찌 보면 꽤나 먼 곳이지만 우리 가족에게 마음의 거리만은 가까운 곳이다. 남편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버님의 장례식 이후 어머님과 함께 간 첫 여행이 여수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수는 식도락 여행으로 너무 좋은 지역이기에 늦은 시간 도착한 첫날부터 게장 백반에 돌게빵을 해치웠다. 그리고 여수에 왔다는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케이블카에 올랐다. 해 질 녘의 여수 밤바다를 높은 곳에서 보다니 우리들의 마음도 높은 곳까지 붕붕 떠올라갔다. 그렇게 부푼 마음과 함께 밖이 어둑해졌을 때가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우주의 여행 제2부가 시작됐다.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숙소라 그런지 방 안에 텐트며, 주방놀이 장난감, 미끄럼틀까지 구비되어 있었던 터다. 장난감을 가지고 잘 놀고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나 우주가 갑자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련하게 혹은 고독하게 땅을 보며 말하는 게 아닌가.
"난 집에 가야게따~
우주는 혼자 집에 간다~
엘레베이터 (타고) 간다~"
잘 놀다가 갑자기 혼자 드라마를 찍는 두 돌 꼬마가 어이없어서 남편과 빵 터지고 말았다. 우주 너도 엄마, 아빠를 닮아 지독한 집순이의 운명을 타고났구나. 여행의 끝에 숙소에 왔으면 됐지, 진짜 집에 가고 싶다니 너무나도 우리 부부의 모습 같아서 어이도 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집순(돌)이. 집에서만 진정한 충전이 되는 사람들. 여기서 집이란 내가 마음 편히 안전하게 나일 수 있는, 타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공간. 밖에서 케이블카처럼 새로운 것들을 즐기고, 숙소에서 장난감 놀이로 불태워도 우리들은 좀 더 고요하게 혼자이고 싶다. 여행이 재밌는 것과 별개로 나도 사실 집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우주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갔다.
사실 소중한 이와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시시콜콜한 말에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작은 행운과 나는 아직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모여 나를 행복으로 인도하니까. 또한 만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해 온전히 자신의 시공간을 내줄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지만 역시나 모든 일에는 균형이라는 것이 있는지, 타인과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오는 행복에는 엄연히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혼자만의 시공간이 굳건하게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타인과 보내는 시간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 같다.
우주를 낳고 내가 늘 마음에 품고 사는 단어가 <우라밸>이다. 우주와 내 라이프 사이의 밸러스랄까. 우라밸이라는 단어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음절은 다름 아닌 ‘라’이다. 우주를 위하고 챙기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내 라이프는 내가 의도적이고 긴밀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거나 푹 쉬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틈만 나면 가지는 게 은근히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시간이 있어야 나도 숨을 쉬고, 내 오딘가에 숨어 있던 스트레스도 소멸된다. 그러고 나면 우주를 보는 시선도 우주를 부르는 말투도 달라진다. 나를 스스로 아껴주는 마음은 결국에 내 주변 사람들까지 아껴주게 한다.
우주가 혼자만의 시간의 중요성을 벌써 알게 된 것이 신기하고 퍽 기특하다. 손과 발이 길어지고 얼굴의 생김새가 달라지는 것보다 더 신기할 때가 아이의 독립성이 눈에 띄게 성장했을 때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우주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우주 많이 컸다:)”라고 말할 때가 많다. 이 말을 하도 들어선 지 요즘 우주가 가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주 엄마 마니 커따!”라고 말한다.
우주를 만나고 내가 정말 성장한 것도 자명한 사실이라
“그치, 엄마도 많이 컸지~”하며 웃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