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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Jul 23. 2023

“우주 보려고 이렇게 달려와써?“ :나의 재취업 적응기

우주의 언어, 31개월

우주가 어린이집에 어느 정도 적응하자, 나의 재취업을 준비가 시작됐다. 그리고 생각보다 오랜 기간 방황했다. 우주와 공존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런 일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어떤 직무로 지원할 지도 갈팡질팡이었다. 내가 첫 취업의 문을 열었던 무역이나 해외영업 쪽 일에 지원을 할지, 우주가 태어날 것을 염두하고 이직했던 영어 회화 강사 일을 계속할 지도 잘 모르겠었다. 처음에는 나의 방황이 장단점이 명확한 직무로 인한 고민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내가 일을 하고 달라질 우주와의 관계와 생활이 지레 겁이 났던 거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정말 운이 좋게 내가 찾던 일을 발견했다. 우주와 여유롭게 등하원할 수 있을 정도로의 근무시간이고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일이 완벽할 수는 없는지 회사 사정으로 일주일 뒤 바로 투입이 되어야 했다. 사실 오히려 그래서 고민할 겨를 없이 물살에 흘려가듯 일을 시작하긴 했다.













초기에는 일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새벽까지 공부하기도 하고 주말도 바쳐야 했다. 하루는 할 일이 많아 남편이 차려준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그렇게 일하고 있는데 방 문 낮은 곳에서 똑똑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더니 그 낮은 높이에서 우주가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엄마 밥 왜 안 머거?“라고 말했다. 천사 같은 이 아이를 안아주고 ”엄마가 어서 빨리 공부 끝낼게! “라고 말하며 혼자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해가 진 시간이긴 했지만 우주가 노래 부르던 놀이터에 갔다.


출근 첫 주 생활 흐름이 바뀌어서 인지 하원시키고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소파에서 나도 모르게 잠들곤 했다. 체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집에 오면 긴장이 확 풀리니 기절할 수밖에..! 그러면 우주는 나를 깨우지 않고 남편과 놀다가 “아빠 쉿! 엄마 자자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우주가 나를 쓰다듬더니 밀린 만큼 안아주며, “엄마 일어나써? 아구 잘했더~~~ 이뻐~~~!”했다. 그 덕분에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기분 좋게 남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우주가 한 말은 아주 낯이 익은 말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우주가 아침에 일어날 때 해주는 말들이었다. 그걸 배우고 따라 해준 우주가 귀엽고 고마운 나날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내가 긴 경력 단절 기간을 마치면서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일에 대한 적응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우주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제일 중요했다. 일을 시작하기 직전 우주가 전보다 30분 늦게 하원을 한 날이 있었다. 30분 늦었을 뿐인데 반 친구 중 가장 꼴등 하원이었다고 한다. 전에는 내가 가장 먼저 데리러 가는 날이 꽤 있었고, 그래서였는지 우주가 30분 늦은 하원을 슬퍼했다고 담임 선생님이 귀띔해 주셨다. 하긴 ‘우리 엄마가 제일 먼저 데리러 왔어!’는 31개월 인생 가장 큰 자랑거리였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주가 너무 슬퍼하면 어쩌나 했던 것은 기우였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원 이후에 회사로 자료를 받으러 간 날이었다. 친정과 시댁 모두 먼 섬육아 중이니 우주를 봐줄 사람이 없어 급한 대로 양해를 구하고 아이와 함께 회사로 향했다. 가는 길, 우주에게 주저리주저리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엄마가 이제 아빠처럼 일을 하게 됐잖아? 엄마는 언니, 오빠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거든. 지금 엄마가 일하는 곳에 가는 거야.”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우주보다 큰 아이들과 나와 함께 일할 선생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주 손을 잡고 아이가 불안하지 않게 틈틈이 상황을 이야기해 주긴 했지만 나도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있던 터라 신경을 쓰지 못하는 순간도 많았다. 감사하게도 나만 우주를 챙기는 건 아니었다. 지나가는 선생님들이 우주에게 먼저 밝게 인사해주시기도 했고, 한 선생님은 우주 손에 젤리를 쥐어주시기도 했다. 자료를 받고 나오는데 우주가 신이 나 떠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일하는데 쪼쪼미(선생님)야.”로 시작하더니 “쪼쪼미가 나한테 젤리를 줬어. 이건 집에 가서 먹자.”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갔던 거였는데 운이 좋게 오히려 우주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왜 걱정했었는지 모르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는 새 챕터로 넘어갔다. 어느 날은 내가 생각보다 우주를 늦게 데리러 갔다. 우주에게 “우주야 엄마가 오늘 좀 늦었지? 근데 엄마 등 좀 봐봐. 우주 빨리 보려고 이렇게 달려와서(달리는 모션도 취했다.) 땀이 엄청 났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우주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며 “엄마가 우주 보려고 이렇게(우주도 달리는 모션을 취한다.) 달려와써?”한다. 내 걱정보다 우주는 늘 잘 적응한다. 육아는 아이를 독립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나를 아이로부터 독립시키는 과정이기도 하구나,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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