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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Aug 27. 2023

“화내지 맛!” : 서툴러서 자연스러운

우주의 언어, 32개월

일을 다시 시작하며 초기에 생긴 큰 변화 중 하나는 마음속에 조급함이 크게 자리 잡았다는 거다. 일에 빨리 적응하고 싶고, 새로운 생활 패턴에 빠르게 익숙해지고 싶고, 집안일을 포함한 모든 일들을 빨리 끝내고 내 시간을 갖고 싶고. 그래서인지 온갖 노력으로 지켜온 내 여유가 붙잡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복잡스러운 머릿속은 당연하게도 육아에도 영향을 줬다.










하루 일과 중 가장 바쁜 시간은 출근 전의 시간이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한다.>라는 말에는 어찌나 많은 일들이 생략되어 있는지…! 먼저 일어나자마자 우주가 마실 물과 영양제를 챙겨두고 어린이집 준비물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체크한다. 나도 기본적인 나갈 채비를 마치고 난 후에 우주를 깨운다. 먹을 것을 간단히 챙겨주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인 후 등원시킨다. 물론 어떤 옷을 어떤 머리핀을 어떤 신발을 입을지 실랑이를 벌이는 엄마와 딸의 예사 신경전도 피할 수 없다. 운이 안 좋으면 어린이집을 가기 싫다며 울먹이는 우주를 설득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등원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온 후 간단한 집안일을 한다. 이때 하지 않으면 영원히 우리 집은 정돈될 수 없다. 나를 위해 책을 조금이라도 읽는다. 밥을 나름 맛있게 챙겨 먹는다. 오늘 할 업무를 미리 준비한다. 그 후 출근!





이 루틴이 잡히기까지 3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는 질서 없고 마음이 전쟁터인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이 날도 서툰 나날 중의 하루였다. 평소 같았으면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주는 이제 스스로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해서 전보다 준비 시간이 더 걸린다. 평소 같으면 응원하며 기다렸을텐데 이 날따라 뭐가 그리 급한지 미적대는 우주에게 호통을 치게 됐다.


“우주 너 빨리 쪼쪼미집 가야지!!”


상상 속에서는 보다 현명한 엄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딸을 볼 줄 알며 한숨 들이마시고 정제된 언어로 이야기할 우아함이 있는, 아이에게 상처를 되도록 적게 주고 사랑이 묻어나게 키우는 그런 엄마. 하지만 나의 이상은 현실의 속도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이미 목소리는 커졌고 말실수는 뱉어졌다. 스스로 실망하는 모습을 직면해야만 한다.








호통을 치고 내가 잘못했구나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만 아이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 주고 풀어나가야 할까 생각하는 것에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 시간을 보내는 와중 우주가 조그만 주먹을 쥐고 내게 소리치는 거다.


 “화내지 맛!!!”


우주가 저리 강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을까. 당황한 것도 찰나, 우주에겐 부당하게 느껴졌을 엄마의 화난 목소리에 맞서 싸우는, 작은 몸집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싫지 않다. 아니 되려 대견하다. 30대인 엄마도 아직 화를 멋지게 내는 일이 어렵다. 분명 더 날 것이 아닌 형태로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을 텐데 어른인 나도 아직 서툴다. 아마 화를 제대로 내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화를 멋지게 내는 것도 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영역이다. 아이를 키우며 삶에 미완인 챕터가 이리 많다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아마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만든 성찰과 반추 때문에 빈 곳이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이겠지. 문제를 인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서툴지 않고 여유가 넘치는, 이미 완성된 것 같은 사람들. 나는 내심 그런 사람들을 동경해 왔다. 쓸데없는 작은 것도 경험한 뒤에야 익숙해지는, 그리고 익숙해져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주를 낳고 나의 서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서툶 나름의 매력을 발견한 거다. 재밌는 건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관계가, 사회생활이 조금은 쉬워졌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여전히 능숙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당황하곤 하지만 당황스러움이 전처럼 부끄럽거나 밉지 않다. 내가 미워하지 않으니 타인의 반응에도 덜 민감해진다.












우주의 호통을 듣고 나는 몇 초 혹은 몇 분의 버퍼링 끝에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네 사과할게. “


버퍼링이라는 서툶 끝에 미안함을 전했으니 나쁘지 않다 믿는다. 완벽과 먼 엄마이지만 노력은 해보겠다. 이렇게 우주와의 아침 싸움이 마무리되고 우주는 양말을 신는다. 아직 앞뒤 구분이 안되어 발바닥에 미끄럼 방지 엠보싱 있는 부분이 발등으로 가있다. 오늘은 그것도 귀엽다고 눈 감아준다. 다음에는 거꾸로 신었다고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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