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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an 25. 2022

인생의 색깔

흑백을 칠하자 인생이라는 그림이 되었다.

 

'건강하기' 새해 목표 중 하나를 이렇게 적었다. 욕망을 충족하면서 건강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기름진 음식에 대한 욕망, 에 대한 욕망은 참기 힘든 수준을 넘어섰다. 지만 망을 더라 건강은 또 다른 인 노력 요구한다. 그중 하나가 운동인데 나는 여태껏 운동을 즐겨본 적이 없다.



작년 3월에는 코로나 확찐자가 되면서 자괴감을 느끼고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당연히 운동은 하지 않았다. 대신 식사량을 줄이기로 했다. 하루 한 끼를 먹되 500kcal를 넘기지 않게끔 먹는 것이다. 거의 죽지 않을 만큼 먹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약 달가량을 지내보니 자연스레 체중은 줄 건강 악화되었다.



결국 무리한 다이어트로 일주일을 실에서 보내야 했다. 원인은 상세불명의 저혈당. 의사 선생님은 퇴원하는 날까지 잔소리를 멈추지 않다.


사람은 하루에 섭취해야 할 필수 영양소가 있어요. 다시 병원에 들어오는 날은 일주일 입원으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의 진심 어린 걱정(?)을 끝으로 나는 무사히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퇴원 후에도 이미 망가진 몸뚱이는 여기저기 아프다며 아우성을 쳐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돼지고기를 먹고 장염에 걸렸다. 분명 덜 익힌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위장 하나는 자신 있다며 으스대던 나였는데 다시 5일 연차를 내고 상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저혈당으로 일주일, 장염으로 오일을 아프고 나니 더 이상은 숨만 쉬어도 건강한 청춘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올해 목표 '건강하기'로 정했다.

저혈당으로 입원한 날




목표를 적어낸지 불과 한 달이 채 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병원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 써 망한 건 싶었다. 한 번은 감기로 이비인후과를 방문했고 일주일  유방외과를 방문했다. 살아생전 경험한 적 없는 가슴의 통증 나를 괴롭혔. '혹시 내가 암이나 큰 병은 아닐까?'라는 걱정을 가득 안고 휴대폰을 었다. 바로 네*버에 유방암 자가진단법을 검색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증상으로 네*버를 찾다. 잠시나마 안도했다. 우연히 클릭한 블로그에 여성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증상이라 적혀있 다른 사이트에는 '아프면 병원을 가세요.'라는 현실적인 조언 적혀있었다. '그래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곧바로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예약고 그날 밤은 잠을 설쳤다.



다음날 예약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다. 대면 진찰 후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젊은 나이라 큰 이상은 없을 거라는 선생님 말씀에 안도했다. 하지만 검사 도중 이상소견이 발견되었다.


음.. 여기 보시면 지금 종양이 보여요.


-네? 종양이요? 안 좋은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닌데.. 모양이 조금 안 좋아서 조직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한참 후 모든 검사가 끝이 났다. 결과는 일주일 뒤 전화로 통보한다는 선생님께 혹시 내가 암일 수도 있냐고 물었다. 결과가 양성이면 좋겠지만 악성이면 암일지도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다. 병원을 나와 엄마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상상 속에 암환자가 되어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한 시간을 멍하니 앉아있다 울기를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고 어지러운 집안을 정리했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청소가 제격이라고 어디에 적어놓은 적이 있다.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움직였다. 왠지 드라마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 같았다. 그리고 감자탕을 끓였다.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근엄했다. 돼지등뼈를 손질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내가 6개월 뒤 죽는다면?'으로 시작한 수많은 질문들이 나를 울렸다.



자기 전까지 꼬리를 문 질문들을 스스로 답하려 다이어리를 펼쳤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으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그러고 보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참 많았구나 라며 또 한 번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한 번도 죽음을 가까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습관처럼 죽고 싶다고 말하던 나를 원망했다. 허공을 보며 그 말은 취소라고 말했다.

최후의 만찬




일주일을 7년처럼 보냈다. 결과가 나오기로 한 당일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출근을 했다. 9시가 넘고 10시가 가까워오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네 ○○병원입니다. 검사 결과 양성 섬유선종으로 나왔어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전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7년 같았던 지난 일주일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어 보였다. 한바탕 울었던 내 모습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다이어리도 색들이 스며 다르게 보였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조금 억울지만 기분은 괜찮다.



어쩌면 나는 흑백이던 인생에 색깔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검은 말을 뱉으면서도 괜찮다는 색깔이 필요했고 검게 드리워진 우울의 구렁텅이에서도 힘내라는 색깔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내가 얻은 색들은 각각의 색을 뽐내며 인생의 한편이라는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7년 같던 일주일도 흑백으로 비추던 검은 날들을 푸르게 색칠한다. 그래서 더 아프고 아름답다.




그날 올해 목표를 새로 적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으로 적어놓은 것들을 목표로 세웠다. 물론 '건강하기'도 실천하면서 말이다. 모두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글을 쓰면서 나는 치킨과 맥주를 상상하고 있다. '건강하기'는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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