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ka Sep 29. 2020

나의 바다, 나의 크루즈

13. 산은 후지, 바다는 세토나이, 온천은 벳뿌 ! -(2)

내가 벳뿌를 다시 찾은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8년이 지난 후였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그렇다 할 구실거리를 찾지 못했던 나는 크루즈 승무원이 되고 나서야 배를 타고 갈수있었다.


8년 만에 다시 찾은 벳뿌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벳뿌는 내가 떠나던 날 마치 정지 버튼을 눌러 놓고, 내가 돌아오자 다시 시작 버튼을 눌러 준 것 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내가 여기 없었다는게 오히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심지어 학교 앞 자주 찾던 식당의 맛있던 카라아게 정식과, 학교 앞 비탈길에 분홍색 낡은 간판의 미용실까지 변한게 하나도 없었다.


나만.. 너무 멀리 다녀온 걸까..

기분이 이상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지친 심신을 치료하는데 노천 온천 만한 곳이 없다.  따뜻한 물 속에서 그 비와 눈을 온 몸으로 맞으며.

벳뿌라면 아무데나 땅을 파도 나오는 온천물.

하지만 나는 그날 온천 보다도 비가 내리는 그 길을 그냥 걷고 싶었다. 그 세월 동안 천 번은 족히 걸었을 기숙사 앞에서 학교까지의 그 길을 나는 무작정 걸었다.


그 시절 나는 참 벳뿌가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막연하게 도쿄를 동경하며 그곳을 뒤로 했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온천이 있어 좋기만 한데.

걷다 보니 모든 곳에 그 사람과의 추억이 너무 짙었다. 벳뿌의 구석 구석까지 어딜 가던 나는 그 사람과 함께였다. 그 사람의 애차, 니산에서 나온 하얀색 스카이 라인을 타고 둘이서 어디든지 날라 다녔었다.


부전공으로 택한 관광과 수업을 처음 듣던 날, 너무 열심히 강의를 하느라 덥지도 않은 날에 땀에 흠뻑 젖은 그를 만났다.

후지산이 몇 미터인지, 일본 47개 도,현,부 소재지를 칠판 가득 써 가며 모든 학생이 이해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명해 주었다. 수업은 단 1분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강의가 좋았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B형 남자.

일에 미쳐있는 그 열정적인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첫 강의부터, 대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선생님과 함께였다. 우리 학교 내의 유일한 총각 선생님에, 거절도 잘 못 하는 성격이라 인기가 많았다. 일본의 모든 여자가 라이벌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지금도 결혼을 하지 않은채 식지 않은 열정으로 제자들 교육에 여념이 없다. 헤어짐의 이유였던 그의 독신주의는 아직도 잘 지켜지고 있는듯 하다.  

그 많은 학생 중 한명이던 나는 세월이 흘렀지만 선생님에게 배운 관광이 좋고, 아직도 세상이 좋다며 떠돌아 다니고 있다.

다시 만날일은 없다.

다만 서로 어디에선가 어떻게든 소식을 접했을때, 멀리서나마 그저 잘 되기를.. 나의 오랜 친구.. 라며 응원해 줄 수 있는 정도의 사이는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첫사랑.

이전 15화 나의 바다, 나의 크루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