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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ka Oct 01. 2020

나의 바다, 나의 크루즈

17. 인천 공항 행 첫차는 5시 입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 입니다.


급하게 귀국을 하게 되는 바람에 짐을 미리 한국에 부칠 여유도 없이 출국 당일 고스란히 안고 공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내내 너무 많은 짐에 관한 생각들 뿐 이었습니다.


이민 가방 2개, 그리고 커다란 캐리어가 또 한 개, 60kg은 족히 될법한 그 짐들은 옷가지며 책들, 1년 동안의 나의 영국 생활이 담긴 물건 들이었습니다. 먼 구간 비행이다 보니 1kg당 얼마로, 초과 요금을 정해진 금액대로 계산하자면 80만원 정도는 나올 듯 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내 머리 속은 초과 요금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있었습니다. 출국 수속을 하려 줄 서있는 동안에도 ‘얼마나 나올까, 그 돈 이면 차라리 1등석을 타고 가는게 나을뻔 했나’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되어 탑승 수속 카운터에 가니 전형적인 서양인의 얼굴을 한 영국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그의 이름은 브라이언 이었어요.

브라이언은 나에게 “어, 짐이 좀 많네” 하더군요.


“응, 1년 동안 살다보니 살림이 좀 늘었어”


근데 이 남자, 티켓 발권 할 생각은 안하고 또 묻습니다.


“영국에선 학생이었니?”


“응. 영어 공부하러 와있었어”

“그래? 영국은 어땠니? 재미있었어?”

갈수록 대화가 산으로 가는거 있죠.

초과 요금 낼 생각에 걱정인 남의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브라이언은 자꾸 나에게 뭔가 물어 옵니다.

하지만 난 그 질문에 그 동안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자, 그래도 난 웃는 얼굴로

“그럼~ 영국 너무 좋았지!”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맘 좋은 브라이언은 자기네 나라에 온 외국인이 자기네 나라에서 행복했다면 그걸로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오버 차지에 대해서는 정말 단 돈 1파운드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미 우리 둘 다 저울에서 60kg 이상을 확인 한 뒤였습니다.

영국이 여유로운 신사의 나라임을 몸소 체험한 순간 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그곳에서 힘들었던 일들, 외로웠던 일들, 동양인이라서 차별 받았던 안좋은 기억들이 싹 사라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영국은 언제가도 기분 좋은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인천 국제 공항은 그런 공간 입니다. 외국인이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는 공간임과 동시에, 한국에 있던 외국인이 마지막으로 거쳐 가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귀국 후 바로 인천 국제 공항에 취직한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임하고 있습니다. 민간 외교관이 뭐 있겠습니까?

하루에도 수만 명이 거쳐가는 환경이다 보니 내가 만날 수 있는 고객은 극 소수에 불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를 만나고 가는 사람들 만큼은 한국을 미소의 나라고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다시 찾고 싶은 나라 코리아, 언제가도 기분 좋은 나라 코리아로 마음속에 품어 준다면 너무 행복 할 것 같습니다.

세계 서비스 평가 4년 연속 1위에 빛나는 그 당당하고 영광스러운 타이틀에 나도 작은 힘이나마 한 몫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뿌듯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국제적으로 작고 힘없는 나라 일 수 있겠습니다만, 인천 공항을 한번 보고 난 외국인이라면 그 이미지가 180도 달라져 버립니다. 한국에도 이렇게 멋진 공항이 있었냐며 감탄을 연발합니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이렇게 시설 좋은 공항은 본적이 없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공항에 있는 동안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감성 서비스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 옛날 언젠가, 히드로 공항의 노란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한 브라이언이 멀고 낯선 동양에서 온 쪼끄만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줬던 것 처럼..

 

새벽 5시.

어쩌면 깨어있는 사람들 보다는 잠들어 있을 사람이 많을 이른 시각.

출근 준비를 하는 나의 손길은 가볍습니다.

공항에 몸 담은 지 3년 여.

아직도 공항은 나에게 두근두근 설레고 벅차고 신선한 존재 입니다.

어둑어둑한 미명을 뚫고 걸어 나가는 나의 발걸음이 경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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