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구름의 서쪽, 운서동 -(2)
내가 존경하는 호텔리어, 그랜드 하얏트 호텔 서울 지점에서 27년간 굳건히 한 자리를 지켜오신 우리나라 최고의 호텔리어 구유회 부장님 (Laurent Koo).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난 너무 많은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모두 지키려면 앞으로 50년은 더 이 호텔에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고객들과의 의리, 우정을 목숨같이 생각하는 그 프로 정신과, 수년을 한결같이 초심을 잃지 않는 그의 재간에 숙연해진다.
인천 국제 공항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24시간, 365일 오픈되어 있는 특수한 공간이기 때문에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 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하루 평균 5 만 명이 넘는 승객들에 묻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때로는 그 많은 승객들 중에서 우연히 만난 빅뱅의 탑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받는 뜻밖의 행운을 누리기도 하고,(탑은 진정한 젠틀맨이었다!)
사람들이 평생에 실제로 한번 볼까 말까 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 전원 몽땅 입축/출국 때 두 번씩 이나 목격 하다가, 존재하는 것 자체 만으로도 레드카드 감이라는 크리스티아노 호날도와 찌리릿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전 일본 축구 국가 대표인 오노 신지 선수에게 TAG Heuer 시계를 채워 줄 수도 있고 그 김에 덩달아 악수도 하고, 귀엽게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그의 싸인을 받기도 했다.
국민 요정 연아 동생의 입국 현장을 기다리다가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인터뷰를 요청 받아 “아이 저희 직원은 이런 거 하면 안되는데” 하며 본의와 다르게 내숭 한번 부리다가 얼떨결에 방송을 타서 8시 뉴스에 “김연아는 대한민국의 등불입니다! “하면서 나오기도 했다.
인천 국제공항 직원이라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테러에 항상 대비 해야 하고, 3000개가 넘게 설치되어있는 CCTV 덕분에 개인 사생활은 아예 철저히 포기 하는 게 속 편하며, 사스나 돼지 인플루엔자가 세계적으로 터져도 그 흔한 마스크 한번 써보지 못했다. (그 때는 이번 코로나 사태와 달랐다)
인천 국제 공항의 직원이라는 것은, 공기 나쁜 실내에서 갇혀 지내고, 전 세계 수 백 개 국가들에서 넘나드는 승객들로 인해 탁하고 지저분한 공기 속에서 하루 종일을 있는 만큼, 기관지 질환과 목캔디는 항상 달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인천 국제 공항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뻥뚤린 활주로를 날마다 내 집 앞마당처럼 볼 수 있고, 덤으로 그 활주로 위로 내려 앉는 황홀한 석양을 바로 눈앞에서 감상하면서 (서해안에 자리잡은 덕분에 해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아무리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더라도 내가 오늘은 이 아름다운 석양 너 때문에 참는다며 마음을 다시 잡을 수도 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내 머리위로 이착륙하는 비행기 그림자가 수도 없이 지나던 곳.
내가 사랑하는 이곳.
난 내 평생에 여기서 일했던 몇 년간을 과연 잊을 수 있을까.
떠나더라도 하루가 멀다 하고 제일 먼저 생각 날 곳이라는 거..
아마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지.
- 퇴사 인터뷰 -
회사 과장님 : 현장에 직접 계신 분이니까 더 잘 아실 것 같아요. 개선해야 할 점 이라던지 보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나 : 세계 최고 공항에서 세계 최고의 직원들과 함께 너무 즐겁게 자부심을 갖고 일했습니다. 최고의 일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