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아빠, 태국에 살고 싶어요
외로워 하지 말기
너무 사랑하지 말기
나만.. 생각하기
“인천 행 KE 668편, 저희 항공기 문을 닫겠습니다”
대한 항공 승무원의 또박또박한 안내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는 이륙 준비로 분주했다.
안돼 !
나는 자리를 박차고 비행기 밖으로 뛰쳐 나오고 싶었다.
나를 공항 까지 데려다 줬던 그는 아직 밖에 있을텐데..
‘발리에서 생긴 일’ 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여행지에 가면 일이 생긴다. 없던 일도 생긴다.
영화배우보다 잘 생긴 그가 만나지고
그에게 에스코트를 받아 호텔 까지 와서
그를 보내기 전 달콤한 짧은 입맞춤.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아직도 여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아
몸만 돌아왔을 뿐, 마음은 그곳에 아직 그대로 있는데..
그곳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우리나라에 도착한 나는 비행기 안에서 뜻밖의 행운으로 해 뜨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너무 좋았거나,
혹은 아주 나빴거나,
혹은 다 처음 이었다.
그래서 .. 후유증이 길 것 같다.
길을 걷다 문득 울컥 하는 첫사랑의 추억처럼
그 작렬하는 태양이, 습기찬 공기가, 그 거리의 유쾌한 소리가, 한약 같이 쓰디쓴 그곳의 커피 한 모금 까지도..
가끔 기억 날 것 같다.
행복했던, 하지만 아팠던,
그 사랑이 다시 보고 싶은 것처럼
3만 9천 피트의 상공에서
나는..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한달 살기’를 해보겠다며 그 좋아하는 방콕도 뒤로하고 이 곳 치앙마이에 왔다.
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는 이 곳엔 일단 뭐든 없었다. 휴양지의 그 흔한 바다도, 최고 번화가와 중심지에 나가봐도 샤넬도, 프라다도 없었다.
치앙마이에서는 아무것도 대단한건 볼 수 없었다.
그저 온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빚어낸 그림자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치앙마이에 굳이 ‘살아보러’ 오는 이유들은 무엇일까.
내가 그토록 사모해 마지않는 옛 가수 등려군의 체취가 남아 있는 이 도시에서 나는 무엇을 하면서 한 달을 보내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