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씨유 쑤운, 치앙마이
일단 산으로 둘러 싸인 곳이니 숙소를 도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산 속 깊숙한 곳으로 잡았다.
이미 관광의 색깔이 너무 짙어 어설픈 번화가가 되어버린 님만해민에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임페리얼 마에 핑 호텔.
(Imperial Mae Ping Hotel)
그 옛날 등려군이 생애 마지막에 머물렀던 그 방을 고스란히 박물관으로 꾸며 놓은 곳이다.
치앙마이에 가기 전부터 그 호텔은 나의 머스트 비지트 1 순위 였다.
친절한 직원들이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그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등려군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나는 숨을 멈추고 잠시 그 방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넓지 않은 방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구경 한다.
둘러 본 후에는 호텔에 남아서 차 한잔을 마시기로 했다. 정갈스럽게 준비된 쿠키와 빵 종류도 딸려 나왔다. 동남아는 제과 제빵 기술이 월등하다.
버터가 듬뿍 들어가 폭신폭신 부드럽고 향기로운 빵에 등려군의 마지막 체취가 섞여 마음이 혼란스럽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도 운명에는 거역하지 못해, 너무 어린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가 버린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 해 본다.
폐렴으로 죽었다고는 하나, 끝까지 맴돌았던 일본 야쿠자와의 관련설, 대만의 스파이였다는 설.. 그런 구설수를 제치고 수 많은 불후의 명곡들을 남긴 그녀의 ‘가수’ 로써의 업적은 어쨌든 대단하다는 생각을 새삼 한다.
며칠을 그렇게 조용하게 보낸 나는 코끼리 학교를 방문 해 보기로 한다. 나는 옛날부터 코끼리를 너무 좋아했다.
동료가 세상을 떠나면 식음을 전폐하고 다 같이 슬퍼 한다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정 많은 그들이 나는 좋았다.
코끼리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치앙마이는 오래 전부터 코끼리 양성으로 유명해서, 수십 개가 넘는 코끼리 학교가 있다.
친구 중에 한 명은 코끼리 학교의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 했던 적이 있었다. 소위 관광업에서 은퇴한 코끼리들을 보살펴 주고 씻기고, 똥도 치우고.. 그렇게 한 2 주 보내다 보면 욕심도 스트레스도 없어지더란다. 나눠 쓰는 방이지만 숙식이 공짜로 제공되고 또 거기서 힘들게 땀 흘리며 일 한 뒤에 나오는 밥은 정말 꿀 맛이라고 했다. 자원 해서 온 사람들이다 보니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라 다들 행복하단다. 세계 각국의 친구들도 쉽게 사귈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 곳에 그가 있었다.
코끼리 만큼이나 순수한 눈망울을 하고서.
태국 남자들은 다 이렇게 잘 생겼나? 아닐걸.
길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보아 왔지만 이렇게 반듯한 인상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는 마치 내가 신기한 얘기라도 해 주는 듯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외국인들과 대화를 할 때 편한 점은 나와는 조금 달라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그들의 사고방식, 행동들을 그저 문화의 차이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평화로워 진다.
이해 하려고 하지 않아도, 싸우지 않아도.
한국에 돌아오니 즐겨 찾던 집 앞의 떡볶이 집이 없어져 있었다. 카페가 들어 온다고 한다. 맛있어서 좋아했던 집인데.. 이제 그 맛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섭섭했다.
한 달..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건가. 한 가게가 문을 닫고 새 가게를 오픈 할 만큼 긴 시간 이었을까.
말리지 않은 신선한 월남 고추의 칼칼한 맛이 그리워 질 때 쯤이면 나는 또 태국으로 갈 가방을 싸고 있겠지. 그 때가 되면 코끼리 학교에서 봉사 활동이라도 할 요령으로 조금은 더 보람된 일정을 계획 해 와야겠다.
현실로 돌아오니 그냥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꿈으로 당분간은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 추억으로 몇 달간은 살아 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치앙마이,
그 이름 하나 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