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퍼스, 참을 수 없는 그리움 -(1)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김소월, 먼 후일
갖지 못한 장난감, 못 가본 길, 갖을 수 없는 사람이
더 애틋하다.
나는 호주와의 인연이 참 깊다.
내가 아주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본 외국이 시드니 큰아빠 댁이었고, 그 10년 후, 인천 공항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찾아온다”고 쓴 서른살 이라는 시를 읽고 20대의 마지막 발악을 꿈꾸며 워킹 홀리데이에 도전해본 곳도 호주의 퍼스였다.
그 시를 읽었을 때 나는, 과연 이렇게 서른이 되어도 괜찮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답은 노No 였다.
이렇게 20대를 마감하기엔 뭔가 덜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영 찜찜했다.
정말이지 이렇게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인천 공항에서는 그래도 한 브랜드의 매니져였던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 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안정된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 조금 목이 말랐었다.
일본어라는 무기는 퍼스에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일본 이민자 인구가 꽤 있는 곳이라 나의 워킹 홀리데이는 조금 순조롭게 돌아 가는 듯 보였다. 사실 일본어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어떤 언어든지 모국어 이외의 언어를 안다면 어딜 가도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토시미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은 벌써 24년 전에 호주에 이민 오셔서 자리 잡으신 분이었다. 일식 가게, 여행사업 등 몇 개의 비즈니스를 갖고 계셨는데, 나는 그날 그날 어디가 바쁜지 상황을 봐서, 사장님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일을 도와 드렸다. 여행사 통번역이며, 일일 가이드, 스시 가게 카운터 까지.
항상 아빠처럼 내 신변을 걱정 해 주고 신경 써주신 토시미 사장님은 정말 퍼스에서 나의 은인 이었다.
사장님은 이제는 연세가 드셔서 일본으로 귀국 하셨다.
평소에는 조용한 시즈오카에서,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필리핀에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지금도 사장님과 가끔 퍼스 얘기를 하면 그때 진짜 우리 무모하게 일하며 열심히 살았었지 하고 회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