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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ka Sep 29. 2020

나의 바다, 나의 크루즈

12. 산은 후지, 바다는 세토나이, 온천은 벳뿌 ! -(1)

Korea is my country, but Beppu is my hometown.



山は富士、海は瀬戸内、湯は別府 라는 말은 일본에서 여행을 갈 때 하는 말이다. 벳뿌는 하코네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최대 자연 온천지로, 특히 병을 치유 할 수있는 테라피 차원에서도 많이 찾는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산을 가려면 후지산, 바다를 가려면 세토나이 해, 온천을 가려면 벳뿌로 가라는 말을 한다.


모든 걸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작은 도시.

벳뿌는 나의 제 2의 고향이다.

거기서 한 소녀가 여자로 성장했다.

 
벳뿌에는 크게 두 개의 대학교가 있다.  

하나는 APU (Asian Pacific University),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나온 벳뿌 대학교.

APU는 설명이 필요 없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리츠메이칸 (立命館) 재단의 큐슈 분교로, 다양한 유학생들이 공부를 하러 온다. 가깝게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멀리서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까지. 전 세계에 자매 결연을 맺은 학교들이 있어서 정말 다국적 학생들로 이루어진 학교다. 전공 과도 그에 맞춰 국제적이다.

학교는 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그곳 기숙사에 살지 않으면 교통편을 이용 해야 하는데, 매일 버스가 다니고 있다. 기숙사에 살면 불편한 점이, 시내를 날 잡고 나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시내에 살면 모든게 편하겠지만 통학에 조금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벳뿌 대학교는 그보다는 현지 학생들이 많은 지방 사립대학교이다. 그럼에도 내가 주저 없이 벳뿌 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리츠메이칸 재단이 일본 국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은 학비를 내야 했기 때문 만은 아니다.


일본에 갔으니 일본 사람들 속에 파묻혀 지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벳뿌 대학교에는 국문학과, 영문학과, 문화재학과, 미술학과 등 주로 문과 계열의 과정이 많다.


나의 대학교 생활은 녹녹하지 않았다.

아무도 바쁘게 살 것 같지 않은 그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다. 덕분에 그 중 2년은 문부성 장학금으로 무사히 학교를 마칠 수 있었고, 졸업식 때는 유학생 대표로 앞에 나가서 상도 받았다.

생활비와 용돈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벳뿌역 바로 앞 백화점의 옷가게에서 좋은 분들과 일하며 많이 배웠다. 손님을 신으로 모시는 일본에서의 서비스직과 판매업이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서비스 강국에서 서비스를 처음 배웠기 때문에 나의 서비스 마인드도 처음부터 그렇게 다져져 버렸다. 손님은 왕도 아닌 신 !

매출 경쟁이 심했고 외국인이다 보니 어떤 날은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모함을 받을 때는 너무 억울 했다. 그래서 그날 일을 마치고 점장님을 찾아가 “아까 그 일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건 제가 한 게 아니라 히라노 상이 실수 한거예요. 제가 봤어요” 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점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유까, 일본에서 사회 생활을 할때는 그냥 하이 하이 (네, 네) 하면서 조용히 있는게 현명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

아마도 정직원인 히라노 상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면 체면이 말이 아닐테니 모두들 속으로는 알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됐던 거 같다.


그렇게 4학년이 되자 일본어에 쓸데없이 자신이 붙은 나는 최성곤 교수님의 추천으로 문화센터의 한국어 강의 알바를 하게 된다. 원래는 교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제는 박사 과정을 다 마치시고 한국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넘길 사람을 찾고 계셨던 것이다.

시대를 너무 잘 탔다. 때는 겨울 연가가 처음 일본으로 넘어가서 욘사마의 열풍으로 한국 이미지가 너무너무 좋을 때였다.


처음 강의를 하던 날, 한복을 입고 교실에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100% 일본 아줌마) 너무 좋아해 주시고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아직도 그 첫만남이 기억 난다며 연락을 해 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비록 그 때까지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최성곤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나는 그곳에서 실 생활에 써먹을 수 있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외국어 공부는 동기부여가 제일 중요한데, 무엇보다도 아주머니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드라마’ 라는 소재로 이미 큰 동기 부여가 되었으니 반 쯤 먹고 들어간거다. 그것을 가지고 반복 청취와 연습을 통해 귀와 입이 트이도록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아줌마들은 한국에 가서 꼭 한번 욘사마와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나는 모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그 때 처음 알았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듣고 피부로 익힌 말이니 문법적인 질문을 받으면 너무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학 부속 한국어학당 에서 나온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의용 책을 아빠에게 공수 받아 나도 같이 공부를 하면서 수업을 했다.


진심은 전달 되었는지, 학습의 성과는 대단했다. 후에 아주머니들이 단체로 한국 행 비행기표를 끊고 2박3일로 서울에 놀러 오신 것이다. 짧은 재회였지만 다들 반가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에 맛집에 동대문 남대문 명동 종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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