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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y 19. 2024

오직 나만을 위한 초특급 환영식

일상의 발견


어서 와.
그동안 너무 힘들었지?
네가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이제 다 잘 될 거야.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길가에 핀 치어리더들

열렬한 환영행렬


병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눈에 들어온 장미꽃들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도구를 들고 격렬히 흔든다.

만개한 꽃잎이 붉은색 강렬한 빛깔로

나를 맞이하는 그 환한 얼굴에

괜스레 내 마음도 벅차다.


이토록 격렬한 환영, 얼마만인지.


입원할 즈음, 꽉 닫힌 봉우리였다. 어느새 활짝 피어 인도를 넘어 만개한 꽃잎을 흔들며 나 좀 봐달라고 앞다투어 얼굴을 내민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를 위한 환영인파인 듯 김칫국을 마시며 격한 착각에 빠져든다.


남편의 차를 타고 멍하니 바라본 창밖, 집 근처

아파트 담장에도 핑크장미가 작은 얼굴을 내밀며 내게 아는 척을 한다.


어서 와~~ 고생했어.


열일하는 핑크조 회원님들




왜일까. 요즘은 사소한 것에도 감동한다. 세상에 있는 크고 작고 소소한 것들을 관찰하고 그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어린아이처럼 고백하고 대화하는 빨강머리앤처럼, 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신의 심경을 주절주절 말하는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처럼 감성이 폭발하곤 한다. 이 나이에 감성폭발은 사춘기보다는 갱년기 증상에 가깝겠지만 2주간 병원에 있다 나와서 그런지 늘 그대로였을 일상 속 것들 마저도 새삼 반갑다. 길가에 핀 꽃들마저도 눈물겹도록 반가운 건 나도 나이 들었음을 반증하는 것일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늘 외롭고 힘들었던 캔디는 울지 않겠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반대로 그 모든 감정에 푹 빠져있었던 캔디였다. 슬픔도 괴로움도 아쉬움도 누르고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자세히 느끼고 표현하고 말았던 순정만화의 주인공들. 지금 나도 그렇다. (얼굴 말고 감성만)



오직 나를 위한 연주

임윤찬 연주 영상 캡쳐

목디스크가 터졌으니, 앞으로는 누워서 책도 휴대폰도 보지 말라는 치료사님의 말이 생각나 멍하니 누워 음악이라도 들어볼까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를 뒤적인다. 천재 피아니스트라고 칭찬 일색 문구로 꽉 찬 동영상에 눈길에 가 클릭한다. 20대 청년 임윤찬의 연주. 근데 이게 웬일인가. 이토록 환상적일 수가. 클래식은 잠들기 전이나 아침 기상 시간에 잔잔한 모닝콜로만 들었을 뿐인 나인데도 그 천재성이 읽히다니. 귀로 전달되는 고결한 위로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성당에서 들었던 익숙한 멜로디가 이렇게 절절하게 들린 건 처음이다. 명동성당 성전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는 젊은  피아니스트가 전해주는 영혼의 메시지는 내 깊은 곳을 건드린다. 가물가물 떠오르는 가사를 흥얼거리며 한동안 온 귀를 열고 감상한다.



내 마음은 주님이 지어내신 작은 그릇
연약하온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소서.


https://youtu.be/uot-FzSto20?si=FyHjlsDa6aEmOfPp




어서나와. 언니들이 쏜다.


샘. 뭐 먹고 싶어.
고생했으니까 원기회복하는 음식 먹자.
언니가 쏠게.


최근 2년 크고 작은 질병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던 덩치 큰 후배교사가 안쓰러웠나 보다. 선배 샘 둘이 시간 내셔서 몸보신을 시켜준다나를 태우러 오신다. 염치불구하고 따라나서는 발걸음이 무겁고도 가볍다. 나이도 어린 내가 걱정을 끼쳐드리니 마음은 무겁고, 이렇게 나를 기억해주시고 챙겨주는 동료가 있으니 든든한 마음에 또 가볍다.  무겁고 가벼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떠오르면 미안함도 고마움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만다. 늘 표현이 서툰 나다.



늘 걷던 길의 빛도 새롭기만 

퇴원하고 이튿날, 너무 일찍 눈이 떠진 아침.

늘 걷던 안양천길을 찾아간다. 저 멀리 동터오는 해가 연한 빛을 뿌리며 나를 맞이한다.


어서 와! 반가워~


점점 차오르는 햇살처럼 산책하는 나의 에너지도 점점 차오르는 것만 같다.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변함없이 나를 반기는 일상 속 소소한 환영 이벤트가 눈물겹도록 감사하다. 힘겨운 오르막길의 끝이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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