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깝고도 먼 섬, 나

데미안 (3)

by 화요일

며칠째 적당한 노래를 찾지 못했다
보컬수업 세 달째, 팝송을 한 곡 부르고 싶었다. 그런데 마땅한 곡이 없다. 챗GPT에 물어보고, 선생님께 자문을 구해도 마음에 드는 곡을 찾기 힘들다. 몇 일 간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겨우 찾은 곡이 바로 Kelly Clarkson의 <Because of you>. 10년 전쯤 교실에서 아이들과 가사를 음미하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후렴구를 듣자, 몇 번이고 따라 불렀던 과거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Part 1]
I will not make the same mistakes that you did
난 당신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어요
I will not let myself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예요
Cause my heart so much misery
내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웠으니까요.

이 곡은 Kelly Clarkson의 자전적인 곡으로 부모의 이혼으로 불행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1집 첫 앨범에 수록하려 했지만 프로듀서의 반대로 실지 못하고 2005년에 2집 《Breakaway》에 수록되었다. 빌보드 핫 100 주간차트에서는 피크 7위, 2005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 72위, 2006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 39위에 올랐다. (출처: 나무위키)


어린 Kelly Clarkson은 부모의 불화 속에 방치된 아이였다. 늘 비관하고 자신의 고통에만 매몰된 어른들을 보며 외롭게 자란다. 그런 어른, 부모를 질책하며 절규하는 Kelly Clarkson의 노래에 나는 자석처럼 이끌리게 되었다. 당신 때문에 너무 무서웠다고 호소하는 아이, 그 목소리가 강력해서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자면서도 계속되는 멜로디, 귓속에 윙윙거려 결국 잠을 설치고 만다.


[Chorus:]
Because of you
당신 때문에
I never stray too far from the sidewalk
나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죠
Because of you
당신 때문에
I learned to play on the safe side so I don't get hurt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죠
Because of you
당신 때문에
I find it hard to trust not only me,
but everyone around me
나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죠
Because of you
당신 때문에
I am afraid
나는 두려워요




당신 때문이야

때때로 괜한 우울감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릴 때면 계속 묻고 또 물으면서 나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것은 때때로 아주 깊고 어두운 동굴 같은 곳으로 나를 인도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결국 잊고 지냈거나 외면했던 어두운 것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내 고통, 내 아픔의 원인이었고, 긴긴 방황과 자책, 불안함의 근원이었다. 행여나 그런 감정이 올라오면 회피와 외면을 반복했었는데, 이제야 대면할 용기가 생겼을까.


Kelly Clarkson 의 절규하듯 절절한 목소리에 나의 감정도 폭발하고 만다. 잘못과 책임이 당신 때문이라고 외치면서. 노래인지 절규인지 모를 목소리에 안의 오래된 분노도 서러움도 쏟아낸다. 그 묵은 감정을 받아내지도 못할 만큼 약한 존재가 된 상대에게는 닿지도 않을 그 허망한 것을 기어이 뱉어내고야만다.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완벽하게 가사를 외우는 것도 정확하게 고음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 내가 느끼는 그 감정을 정확히 짚어서 쏟아내는 것만이 내가 노래하는 유일한 이유고 목표다. 완벽하게 방음이 되고 그 누구도 듣지 못하는 안전한 곳에서만 쏟아낼 수 있는 가련한 분노. 한참 동안 설움과 울부짖음을 토하고 나서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그것은 또 하나의 죽음이었고 또 하나의 살아있음이었다.





작은 외딴섬

언제든 갈 수 있고 가까이에 있지만 누구나 갈 수 없는 아니 찾아갈 여유를 찾기 힘든 가장 가깝고도 먼 여행은 바로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내면여행이다. 가장 가깝고도 먼, 작은 외딴섬 같은 그곳.


거기 내 친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여느 때처럼 꼿꼿하게 바른 태도로.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여는 때와는 아주 달랐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그에게서 나왔다고 무엇인가가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뜨고 있었다. 눈은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았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굳어져 있었고 내면을 향하여 혹은 아주 먼 곳을 향하여 있었다. (88~89쪽, 데미안, 민음사)

늘 보던 친구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깊은 내면여행을 지켜본다. 태고처럼 늙은, 동물 같은, 돌 같은, 아름답고 찬, 죽었는데 남모르게 전대미문의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다고. 그는 죽은 것 같았지만 죽지 않았다고 싱클레어는 말한다.

싱클레어도 그를 따라 자기만의 섬으로 여행을 시도한다. 하지만 금세 피곤해지고 눈꺼풀에 경련이 느낀다, 하지만 그 후, 그는 달라졌다. 익숙한 느낌들과 기쁨들이 그에게서 각성을 일그러뜨리고 퇴색시켰다고 그는 말한다.






나도 가끔 내 안으로 여행을 하곤 한다.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곤 하지만 기어이 찾아들어간다. 감정의 근원을 찾아 묻고 또 물으며 찾아들어가던 어느 날, 누군가 보였다. 잔뜩 웅크린 어린아이가, 사랑받고 싶은데 말할 수 없고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아이. 먹고사는 것에 허덕이던 어린 시절에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이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욕망, 그 외에 모든 것은 금지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뭐든 스스로 잘하고 손이 덜가는 착한 아이가 되어 살아남았다. 그런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제한하면서. 희미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든든한 큰 딸의 역할을 해내며 간신히 붙잡고 있던 때였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 버거웠던 불안과 처음 시작하는 모든 일들의 긴장과 초조를 싫은 내색하지않고 오롯이 스스로 감당하려고 애썼다. 때때로 겪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꾸짖고 질책했다. 미련하게도 그렇게 자신을 길들였다.


하지만 이제야 외면했던 어린 나를 보게 되었다. 문득 듣게 된 노래 한 곡을 통해서, 그 가사에 내 모든 설움과 분노가 연결되었고 소리내어 노래를 부르며 펑펑 울었고 네 탓이라고 외치며 홀로 힘들어했던 아이를 대변했다. 그 노래가 바로 Kelly Clarkson의 <Because of you>. 번이고 부르고 또 부르다 결국 목이 다 쉬어 목소리가 안나오게 되고 나서야 멈췄다. 그리고 한 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다 울고 있는 그 아이가 측은해져 바라보다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지긋이 말해주었다.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



영화 굿윌헌팅에서 상담선생님이었던 로빈윌리엄스가 아이한테 말했던 것처럼 아이의 눈을 쳐다보면서 똑똑히 말해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마도 나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말해 줄 어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에게 말하고 말았지만. 다행히도 바닥을 치고 내려갔던 감정이 올라오던 때라, 모든 잘못이 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때라, 어린 나를 안아줄 만큼 단단해졌을때라 스스로를 위로해 줄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잘했다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나를 위로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달라서 그 부조화를 바로 잡고 싶었지만 불가능했고 결국 포기했다. 그럴 여력도 열정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저 흘러가는 데로 내버려 두고 싶은 마음에. 원망도 후회도 모두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도 스친다, 그저 내 안의 힘이 강해져서 그 상처에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나를 힘들게 한 그 사람도 한없이 약한 내면 아이를 부둥겨안고 있기에. 용서도 이해도 구할 수 없을 만큼 아직도 자기연민에 사로잡혀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 길고 힘든 여행을 뚫고 나온 나는 더이상 예전의 나와 같지않다. 한번 지나오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어떤 길을 난 이제 막 빠져나왔다. 코 끝에 스치는 바람이 제법 상쾌하다.



#라라크루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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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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