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칼자국

데미안 (1)

by 화요일

두 세계

안전하고 편안한 곳, 익숙하고 안정적인 곳의 한계와 변화 없음을 느낄 때쯤, 그 너머의 세계를 탐하곤 한다. 조금 어둡고 조금 무섭고 조금 더 재밌어 보이는 그곳. 얌전했던 싱클레어가 프란츠를 만나고 그에게 복종하면서 경험했던 세계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었지만 한번 발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뻘처럼 발버둥 칠수록 더 빠져나올 수 없게 되고 마는.




작은 가게였다

아빠는 작은 금은방을 하셨다. 배꼽높이의 진열대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판 안에 크고 작은 시계와 번쩍이는 반지, 목걸이 등이 백열등 불빛아래 화려하게 놓여있었다. 귀금속들은 멋진 공간에 각자 자리가 있었지만 내 방은 없었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며 고만고만한 네 아이가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뒹굴거리며 한 방에서 지낼 때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간신히 구한 내 공부방은 가계 안쪽, 작은 공간이었다. 아빠가 밖에서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시면 가게 전체는 내 세상이 되고, 책상 하나를 두고 몸하나 누우면 꽉 차는 조그만 그 방에서 라디오를 듣고 엽서를 쓰고 카세트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녹음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어둠을 틈 타 발칙한 비행을 하곤 했는데 그것은 진열장 아래 작은 서랍에서 돈을 꺼내 먹고 싶은 주전부리를 먹는 것. 당시엔 용돈이라는 개념도 딱히 없던 시절이라 아빠의 허락도 없이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라면도 사먹고 쥐포랑 과자도 사 먹었다. 어두컴컴한 공간, 좁은 주방에서 끓여 먹던 라면은 얼마나 맛있던지, 그 재미가 너무 강력해서 꽤 오랫동안 나는 가게의 야간 경비를 도맡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꾸만 없어지는 지폐의 행방을 아빠는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알면서도 그런 나를 못 본 척 넘어가 준 것이 아닐까. 이 앙큼한 좀도둑을 그냥 눈감아 주신 아빠의 이해의 선물 덕분에 사춘기는 별다른 질풍노도 없이 평온하게 지나갔다. 그만큼 몸무게의 숫자가 자꾸만 커지긴 했지만. 혼자만의 고요한 저녁시간은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기에 충분했다. 말 안 듣고 귀찮은 동생도,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없는 온전한 자유, 그 달콤함이란.



파파이스 친구들

여고에 다녔다. 하이틴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선머슴처럼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아이가 여학교에선 인기가 많다. 우리 학교의 친구 P가 그랬다. 그녀는 말도 잘하고 유머감각도 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미대진학을 꿈꾸는 이쁜 여학생, C가 늘 함께 있었다. 조막만 한 얼굴에 굵은 쌍꺼풀, 웃는 얼굴이 이쁜 친구였다. 그 친구는 여자아이들도 좋아할 만큼 동화 속 공주 같았다. 그리고 이 둘을 추종하는 여인 둘, 이렇게 넷이 늘 함께 다녔고 나는 그 무리를 기웃거리며 종종 함께 놀았다. 한창 크는 나이라 항상 배고팠던 우리는 학교 매점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하지만 C, P를 중심으로 한 친구들은 달랐다. 학교 매점에 만족하지 않고 그 당시 유행했던 파파이스, 맥도널드를 돌며 놀곤 했다. 특히나 파파이스 비스킷, 갓 구운 빵에 달달한 잼을 발라서 자주 먹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당시 고등학생에겐 비싼 메뉴들을 그녀들은 거침없이 사 먹었다. 그 무리와 보조를 맞추느라 갈수록 내 씀씀이도 커져만 갔다. 그렇게 나는 그 무리에 기꺼이 젖어들어갔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니 좋았고 멋진 아이들과 함께 하니, 나도 뭔가 된 것처럼 으스댔다. 다른 평범한 친구들과는 거리를 두면서.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뭔가 힘들고 불편했다. 그들을 만나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고 부담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의견이나 취향존중은 없었고 무조건 그들이 하자는 데로 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존재를 있어도 그냥, 없어도 그냥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어느 날, 그런 태도가 너무 크게 느껴졌고 그즈음, 수학여행에서 다른 친구들과 같은 방을 쓰면서 그들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수학여행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은 달랐다. 나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나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이런 느낌은 파파이스를 좋아하던 친구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이었다.






기꺼이 택한 두려움

라틴어 수업을 듣던 모범생 싱클레어는 왜 프란츠 크로머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안전한 세계가 전부였던 싱클레어에게 크로머의 세계는 새로운 곳이었다. 그곳에 대한 호기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제 멋대로 꾸며낸 도둑질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쉽게 그 세계를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이야기 덕분에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협박과 갈취에 시달리고 만다. 곧 후회와 반성으로 발버둥 치지만 이미 늦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그를 집어삼키고 만 것이다. 애송이들의 객기는 때때로 이렇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곤 한다. 크로머의 노예처럼 그의 자유를 기꺼이 속박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은 인간의 성장의 통과의례일까.



경계를 넘는다는 건

안전한 경계를 뛰어넘는 도전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 행위로 한 세계의 한계를 어림할 수 있고, 두 세계 간의 차이를 확연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교직에 들어오기 전, 나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다. 서점에서 사전을 팔기도 했고 백화점에서 스카프를 팔기도 했다. 잠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그중 가장 오래 한 것은 과외였다. 이런 경험이 내게 준 것은 돈 몇 푼 만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은 내게 맞지 않다는 정확한 기준도 주었다.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어버리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뭔가를 판다는 행위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게 관건. 일하는 동안 담당 출판사의 사전 판매 1위를 만들기도 하고 많은 월급도 받기도 했지만 그런 즐거움보다 뭔가를 팔기 위해 내가 누군가를 속이는 것 같은 느낌이 싫었다. 상품의 단점은 감추고 장점만 부각해서 과대포장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내겐 스트레스가 되고 불편함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확실히 결정했다. 공공의 일을 해야겠다는 확신, 그리고 바로 교원 임용고시에 올인했다. 다양한 세계를 직접,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우물쭈물하는 선택의 순간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곤 하니까.


첫 칼자국

싱클레어의 일탈은 아버지에겐 큰 상처, 칼자국이 될 거라는 걸 그는 안다. 하지만 그 칼자국은 싱클레어 자신에겐 아빠라는 안전한 세계를 뚫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작은 틈새, 새로운 문이 될 수도 있다.

싱클레어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래서 아이들이 수시로 안전한 테두리, 울타리를 넘나들고 부수려 했구나, 자신의 일탈을 모르고 넘어가는 어른의 무지함에 희열을 느꼈겠구나, '라고. 부모에게 거친 말로 반박하고 한계를 지적하며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내겐 아픈 상처고 칼자국이지만 아이에게는 세계를 확장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공사이다. 알고도 모른 척하며 이해의 선물을 준 아빠처럼 되기엔 아직 한참 부족한 나다. 사춘기 아들의 어설픈 반항에 속으론 육두문자를 꼽씹고, 겉으론 '그래, 그럴 수 있어'를 외친다. 화를 참고 어금니 꽉 깨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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