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꽃들 속에서"라고 시작하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분명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이 들어야 하는데
난 노래 재생과 동시에'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수천, 수만 번 흔들렸던 과거의 나 자신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꽃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난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수시로 흔들렸고 불안해했었다.
항상 마음이 조급했었고, 더 잘하고 싶었고, 나에게도 재능이 있기를 바랬고, 그런 재능이 없다고 느껴지던 날은 집에 돌아와 꽃을 몇 번이나 해체하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며 발을 동동 거렸었다.
내 꽃의 부족한 부분만 보였었다.
처음의 시작은 순수했었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꽃을 만나고 처음 알게 되었다. 매일매일 머릿속에서 꽃이 떠나가질 않았고 어떤 꽃을 무슨 컬러로 조합해야 가장 아름다울지를 생각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었다. 꽃에 대한 사랑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잘하고 싶다는 간절함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더군다나 진로를 변경하고 선택한 꽃이었기에 더욱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주변에 증명해 보이고 싶었었다. 순수한 사랑으로 시작했던 꽃이 어는 순간 나의 절체절명의 과제로 변하면서 반드시 꽃을 잘 해내야만 하는 것이 내 인생 가장 큰 목표가 되어 버렸던 것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꽃을 매일 바라보면서, 걱정과 불안으로 내선택이, 이 간절함이 나를 배신 하지를 않기를 기도했다. 운전도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혼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꽃시장에서 꽃을 한아름 이고 지고 돌아와 수십 번을 연습했었다.
"너에게는 재능이 있으니 불안해하지 마, 잘될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 주변의 시선은 한낱 비싼 취미생활로, 혹은 '그냥 하던 공부나 마저 하지'라는 우려와 의심의 눈빛이 대부분이었고 난 더욱더 간절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 선생님들마저도 좀 편안한 마음으로 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었지만 타고나기를 어떠한 순간에서도 온전히 백 프로 즐기지 못하는 내 못난 성격 때문일까
런던의 플라워스쿨을 다닐 적에도, 항상 "Beautiful!! Lovely!"외치는 그들 사이에서 난 아마 스쿨 역사상 전무후무한 유일한 심각한 동양 여학생이었을 것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하면서도, 계속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두려워하면서도 간절했기에 계속 도전했었다.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그러길 반복하며 아주 조금씩 난 성장해나갔었다.
그 시간 동안 수백, 수천번 흔들렸었지만 그때마다 꽃이 나를 잡아줬었다.
내가 너무 사랑했었던, 그토록 간절했던 그 꽃들이 결국 나를 붙들어줬었다.
흔들리는 건 나였었지 꽃이 아니었다.
가끔 예전의 나를 보는듯한 수강생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항상 고민하고, 수업시간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마지막 꽃을 어디에 꽂을지 망설이신다.
하지만 모든 수업 회차가 끝났을 때 가장 실력이 늘어있는 분은 가장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고민하던 분이다.
잘하고 싶기에 망설이게 되고 고민하게 되고 , 결국 그런 마음이 실력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즐기기만 한다면 내 만족에서 끝날 수도 있고 언젠가 흥미가 떨어져 지겨워지는 날도 온다.
하지만 간절함은 우리가 쓰러지고 싶을 때마다 일으켜 세워 결국은 한단계 위로 성장시켜준다.
히지만 난 아이러니하게도 강의시간에 늘 이런 말로 수업을 시작한다.
"꽃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건 꽃을 꽂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편안하고 즐긴다는 마음으로 꽃을 꽂을 때, 결과물에 더 만족할 수 있고 집에 돌아가셔서도 내 꽃을 볼 때마다 행복해질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 나처럼 심각해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꽃을 보고 즐겁기만 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