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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May 02. 2021

선택

꽃시장에서 나는 삶을 연습한다.


가끔은 인생에 선택지가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주  결정까지,  선택의 기로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했었고 언젠가부터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은 어떻게든 회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했다. 어쩔 때는 결정을 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번이나 번복을 하고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우왕좌왕하다 결국은 엉겁결에 아무 버튼이나 눌러 일을 그르친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나는 오히려  중요한 결정도 너무 쉽게 내려버려 주변을 당황시킬 만큼 다소 즉흥적이고 대범한 편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잦은 실패로 인하여 나 자신과 내선택에 대한 불신 , 의심 그리고 패배감이 나를 덮쳐왔었고  도미노가 와르르 쓰러지듯 아주 작은 선택마저도 내가 한 결정들은 모두 잘못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내 인생의 전반적인 부분이 흔들리기도 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내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그 후, 나는 오히려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회피해버리는 미성숙한 어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매주마다 선택의 시험장에 올려놓는 곳 이 있다.

바로 새벽 꽃시장이다.

물론 이곳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는 그런 어마 무시한 선택을 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오직 나의 결정에 따라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수업부터 주문제작까지, 커리큘럼을 계획하고 꽃 종류와 컬러를 선정하고 화기와 포장지를 선택하는 과정을 매주 반복하며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 위에 놓이는 곳이다.  계획을 미리 하고 간다 한들 그때그때 시장 상황은 내 예상과 다르기에 그 자리에서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이는 것인데  매주 그러한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좋아서 하는 이 일안에서 이 과정은 도망칠 수 도 회피할 수도 없는,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강박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느끼는 그 상황에 계속 노출되어야 한다고 하듯  나도 싫든 좋든 매주 선택의 갈림길 위에서 끊임없이 선택과 변경을 해가며  이 선택하는 행위에 익숙해져야만 했었다. 그렇게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듯 이 과정을 반복해가며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실패를 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수정과 보완을 하며 계속 나아가는 연습을 했다.그리고 그 연습이 하나 둘 쌓여  선택지 중 괜찮은 답을 고르는 날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마치 새벽 꽃시장은 나의 두려움과 회피 성향을 치료하는 치유의 공간과 같았다.


수많은 선택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을 텐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내린 선택에 후회도 했었고 의심도 했었고  가지 않은 길에 미련도 많았었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그리고 그 결정이 내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두려워 도망도 쳐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바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무섭고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겨우 내디딘 작은 한 발짝이 결국은 나를 저만치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고 덜덜 떨며 눈물을 머금고 했었던 힘겨웠던 선택들이 지금은 나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매주 새벽시장에서 나는 삶을 연습하고 선택을 연습한다.

궁극적으로는 내 선택이 틀리지않다는것을 혹은 틀리더라도 나 자체가 틀린것은 아니라는, 스스로 나 자신을 믿는 연습을 하는것이다.


비록 사소한 선택일지라도 그날 내가 고른 꽃이 누군가의 기분을 밝혀주고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매번  진심을 다해 신중히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성공했었던 경험들을 하나 둘 내 안에 각인시켜 언젠가 진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날이 왔을 때  나를 믿고, 나의 직관을 믿어 자신감있게  선택지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는 날을 상상해본다.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크고 작은 선택들을  내리며  그 결과에 수긍하고 다시 수정하고 한번 더 도전하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꽃시장이란 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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