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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Feb 25. 2021

기분 좋은루틴이 있는 삶

나이가 들어가고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고 느껴질 때면 늘 아쉬운 마음뿐이지만 그래도 그중 하나 괜찮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취향이 확고해지고 일상 속 나만의 루틴(routine)이 확립되어간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정립된 개인의 취향은 본인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그 취향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자신만의 루틴은 평범한 하루를 의미 있고 생기 있게 만들어준다.


루틴이라는 단어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상 속 지루한 행위라고도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나에게 루틴이 가지는 의미는 하루 중 내가 기분 좋아질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습관적으로 행하는 일종의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이다. 무의미하고 기계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일상에 나만의 의미 있는 루틴이 있다면 하루가 특별해지고 내일이 기다려질 수 있다.  


나는 매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5분남짓의 명상이 끝난 후 집안 전체를 환기시키며 본격적으로 집안 곳곳의 화병의 물을 갈고 꽃줄기를 다듬고 나무와 식물들의 상태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집 어딘가에 허전한 공간이 눈에 띈다면 그곳에 꽃 한 송이라도 올려두어 그 공간을 채워주고 식물의 위치도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매일 보는 풍경을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 본다


그리고 날씨가 따뜻해지고 선선해지는 계절이 오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즈음  홀로 동네 공원으로 나가 열심히 달리기를 한다.  5km 정도 달리고 나서야 (종종 걷다 뛰다를 반복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유튜브를 보며 스트레칭을 한 후 잠자리에 든다.


이것이 나의 하루 루틴이며  1년의 루틴이다.


아침 명상을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꽃과 식물이 일이 아닌 내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지는 불과 2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달리기를 한지는 놀랍게도 4년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내 마음보다는 타인의 마음에 더 집중했었다. 나만의 공간보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 그저 그럴 듯 해 보이는 타인의 취향에 맞춘 공간을 만들려고만 했었다. 그리고 나를 위한 꽃보다는 오직  남을 위한 꽃, 타인의 마음에 들만한 꽃을 만들기 위해 온갖 애를 썼었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허상이었다는것을 시간이 꽤 흘러 온몸과 마음이 직접 부딪히고 깨진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애썼던 타인들의 마음에는 결코 100프로 들 수 없다는 것을,  있어 보이고 꽤 괜찮아 보이던 공간 안에서는 결국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오직 남의 눈에 들기 위해 만들어지는 꽃은 결국 누구의 눈에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은 자괴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날들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만 하던 어느 날, 우연히 시작된  작은 행동 하나가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해 주었고 그 행동은 습관이 되었고  내 루틴이 되었다.


어쩌다 나도 모르게  발을 들이게 된 달리기를 통하여 나는  흐트러진 내 몸과 마음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  매일 조금씩 시간과 거리를 늘려가는 동안 달리기는 어느새 나의 삶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믿지 못하지만 내 일상 속 첫 번째 루틴이 되었다.

 

꽃이 일이 되고 나서부터는 꽃의 단가가 얼마인지가 어느 것보다 중요해졌고  이 일의 가장 첫 번째 우선순위가 되어버렸었다. 늘 빠듯한 예산안에서 최대한의 퀄리티를 내야 하는(플로리스트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것이 가장 큰 숙제였기에 시장을  몇 바퀴씩 돌면서 "사장님 오늘 이 꽃 얼마예요?"만 앵무새처럼 매일 외쳐대고 있었다. 어느 날 시장에서 모든 꽃을 돈으로만 환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순간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꽃의 시장논리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소위 '현타'라는 것을 몇 번 크게 맞고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한동안 꽃을  일부러 외면했었고 내 인생에서 완전히 배제한 채 지냈었다. 하지만 그 시기 동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잘 지내지 못했었고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그 어두웠던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나를 위한 꽃을 구입하기 위하여 꽃시장으로 다시 향할 수 있었다.

 이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수업도 판매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꽃을 위하여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꽃시장을 간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쯤에는 집에 들일 새로운 식물을 찾으러 농장을 방문한다. 이렇게 꽃과 식물은 내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매일 아침 꽃을 다듬고 식물을 관리하는 루틴은 나에게 소소한 위로가, 때로는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종종 소란스러웠고 어지러울 때가 많았다.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감은 나의 일상을 자주 흔들었고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든 내 마음을 잘 추슬러 잘 살아내고 싶었다. 그런 간절함으로 시작한 것이 새벽 명상이었다. 일단 새벽 기상이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잡념들로 인하여 처음에는 오히려 마음이 버거웠었다. 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내 삶에  하나라도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꾸준히 매일 새벽, 거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느 순간 명상을 하는 날이 하지 않는 날보다 많아졌고 명상을 한날은 한결 가볍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순간순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도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루틴들이 내 일상에 자리 잡게 되면서 나의 하루는 조금 더 활력 있어지고 단단해졌다. 물론 매일이 완벽하지는 않다. 아직은 괜찮은 날보다 안 괜찮은 날이 조금 더 많다. 하지만 비록 오늘이 엉망진창인 날이었을 지라도  내일은 다시 나의 루틴대로 하루를 시작하면 된다라는 어떠한 믿음이 나를 단단히 받쳐주게 되었다.


나열하다 보니 조금은 거창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이다. ( 물론 달리기가 루틴이 되기까지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꽃 한 송이, 식물 하나를 내 공간에 들이고 하루 24시간 중 10여분의 명상은 큰 힘이 들지는 않는다.)

나를 기분 좋게 해 줄 수 있는 취향의 것들을  찾아본 후 그것을 내 일상으로 자주 데리고 오다 보면 어느새 나의 생활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나만의 행복한 루틴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그동안 들어가고 싶었지만 막상 용기가 나지 않던 꽃집에 들러 꽃 한 송이를 구입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혹은 주말마다 근교 화원에 들러 작은 식물을 하나씩 데리고 오는 것은 어떨까?

꽃 한 송이, 식물 하나가 나의 마음과  일상을 환기시켜주고 정돈시켜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작은 습관이 루틴이 되고 이러한 나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채워나가는 과정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나다워질 수 있도록 해주는 동시에 현재,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는 진리가 아닐까.


난 오늘도 오랜 시간 내 손길을 거쳐 이제는 낡아버린 원목 가구들과  각각의 히스토리가 있는 커피잔들 그리고 아로마향과 이 공간의 체취가 섞여, 특유의 향이 어우러져 완성된 내 취향의 공간에서 명상을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내 눈길이 닿는 모든 곳마다 나를 위한 꽃과 식물을 올려두고 들여다보며  흐트러진 마음에 위로를 건네며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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