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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Mar 04. 2021

일상이 예술이 될때

미술이론을 전공하던 대학원 시절, 수업의 일환으로 미술관 인턴을 1년 가까이 했었다.

삼청동 정독 도서관 바로 앞에 위치한 미술관은 돌담길을 따라 크고 작은 갤러리부터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예쁜 샌드위치 집, 커피숍 등등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매력 있는 거리의 중심에 있었다. 전시회를 준비하던 때에는 그 거리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삼청동 곳곳의 갤러리와 미술관의 문턱을 부지런히 밟았던, 지금 돌이켜보면 20대 청춘 속 꽤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어느 작가님의 전시회를 준비하며 교육팀을 도와 전시 도슨트 지원생들을 위한 저녁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원생들 대부분은 대학생 및 직장인들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소중한 저녁시간을 이곳에 할애하고 있었다. 수업 첫 시간,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를 돌아가며 말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어느 여성 직장인 지원자분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팍팍한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예술 곁에 머무르고 싶어서 지원하게 됐어요."


나는  그 당시 소위 예술이란 것과 눈떠서 잠들 때까지 함께 하고 있었지만 그때의 나에게 예술은 동경의 대상일 뿐 곁에 있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고 싶지만 왠지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영역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저 예술 어느 변두리쯤에서 서성이며  수업과 과제와 일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버겁게 이어나가고 있던 일개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그 후, 꽤 시간이 흘러 그때 그 지원자분이 말하던  일상의 팍팍함을 몸소 느끼게 되었을 때쯤,  꽃이라는 새로운 동경의 대상이 나에게 찾아왔다. 꽃을 만지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은 바라만 보며 동경하던 예술과 달리 내가 직접 과정에 참여하여 결과물을 창조하는, 마치 내가 예술가가 된 듯 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누군가는 "네가 꽃으로 예술할 것도 아니면서,.."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자연에서 자라나는 꽃을  개인의 취향과 개성에 맞춰 조합하고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로 창조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면 무엇인가 싶다.  그때 그 시절 막연한 심정으로 맴돌기만 했던 심오하고 고고한 예술이 아닐지라도 이제 나는 매일 크든 작든 감동을 느끼며 예술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한편으로, 더 나아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스스로 창조하고 향유하는 미적인 모든 활동 또한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퇴근길 아무 일도 없지만 꽃집에 들러 그 계절의 꽃을 구입하고, 유리병에 꽃 한 송이를 꽂아 식탁 위에 올려 두며,  직접 요리한 음식을 예쁜 그릇에 옮겨 담아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 손수 그린  작은 그림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창가에 작은 식물을 올려 매일 보던 풍경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는 등 일상 속 우리가 행하는 작은 행위가 소소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면 이것 또한  일상 속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예술을 한다라는 말 자체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만큼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지금의 나는 매일 하루 일과 속에서 예술을 감상하고 예술가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 예술은 꽃 몇 송이를 이리저리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집안을 정돈하고, 가구를 새롭게 배치하고,음식을 하고, 이 공간에 글을 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남들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들 일지라도 나는 의식을 치르듯 정성을 다하여 그 순간에 몰입하고자 한다. 특별하거나 거창한 장소가 아닌, 현재 머물고 있는 이 공간에서  매일매일 스스로가 좋아하는 어떤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르며 예술가에 가까워지는 경험을 한다.


이처럼 일상 속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매 순간이 예술이 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자주 감동받고 행복하며 늘 예술 곁에 머무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나의 작은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의식하고 집중하여 몰입해보는 건 어떨까.

계란 프라이를 하나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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