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꽃
이 공간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꽃을 만지는 일을 직업으로 하며 순간순간 꽃에 관해 떠오르는 단상들을 소소하게 때로는 비장하게 써 내려가던 이 공간은 인생의 한 챕터 속 아름답지만 치열하게 고군분투했던 시절, 나와 꽃이 함께 찍힌 사진을 담은 앨범 같은 것이었다.
작년은 이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나는 과감히 이 일을 그만두었다.
꽃이라는 존재가 내 인생에 차지하는 의미가 너무나 크고 무거웠다.
그 무게가 때로는 기꺼이 짊어지고 평생 갈 수 도 있겠다고 생각될 만큼 꽃이 너무 좋았다.
어느 날은 꽃이 버겁고 어렵기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양가의 감정이 하나로 점철되면서 종국에는 이 일이 확장되고 개인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오던 시기에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일을 제안받는 것이 두려워 제안 의사들을 회피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쯤 나는 인생의 또 다른 새로운 챕터를 막 넘기려던 찰나였다.
주변에는 잠시 이 일을 쉬고 싶다며 다음번을 기약하겠다고 전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때 진짜 꽃에게 이별을 고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꽃시장을 가지도, 길가의 꽃을 들여다보지도,
그다지 허전하지도, 그립지도, 후회되지도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름 나만의 개인사들과 평생을 따라다니는 고질적인 불안들을 다루며 나이 마흔에도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몇 주 전 나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집을 고치기 위해 준비하고 공사하며 , 이 공간 모든 곳곳에는 나의 생각,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내가 그리던 따뜻하고 '나'의 정체성이 그대로 담긴 공간이 탄생하였다.
집들이에 온 지인이 "너네 집에 어떻게 꽃이 없어?"라며 물었다.
나=꽃이라는 공식이 이미 새겨져 있는 지인들에게는 의아했었나 보다.
그렇다
'나'자체인 이 공간에 꽃이 없었다.
꽃일을 그만두기 전에는 항상 꽃이 집에 최소 한 두 송이는 있었다.
일이 끝나고 남은 자투리 꽃들을 짧은 병에 꽂아 잠들기 전까지 보고는 했었다.
아주 오랜만에 새벽 꽃시장을 향하였다.
누군가를 위한 꽃이 아닌 나의 공간을 위한 꽃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었던 여름 꽃을 한 아름 사와 주방에서 다듬고 있으니
지나가던 남편이 "드디어 우리 집 같네"라며 너는 꽃을 만질 때가 가장 잘 어울린다며 다시 이 일을 하고 싶으면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넌지시 던졌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얼마 전 푸바오를 중국에 보내고 온 강철원 사육사의 푸바오에게 쓴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아직도 그 문장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사랑하는 푸바오, 할부지가 너를 두고 간다. 꼭 보러 올 거야.
사육사 할아버지의 푸바오를 두고 가는 마음이 어떠한지가 너를 두고 간다 한 문장으로 다 설명되는듯했다.
내가 감히 그 마음에 빗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너무나 사랑했던 꽃과 작별을 하며
겉으로는 단호하게 뒤돌아섰지만
"너를 이곳에 두고 갈게 , 하지만 언젠가 다시 보러 올게."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저 뒤편에 두고 온 나의 꽃에게 편지를 조심스레 남겨본다.
"사랑하는 나의 꽃,
함께해서 내가 빛날 수 있었던 과거에 너를 두고 간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
다시 너를 만나러 꼭 올 거야.
잘 지내고 있어
많이 많이 고마웠어."